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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의 탄생-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싸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따로 갈 수 있을까. 둘이 같이 발전한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미국 건국 초기 두 세력은 처절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웠다. 헤린 브랜즈가 미국 금융사의 이면을 파헤친 ‘머니 맨’에 따르면 미국의 금융제도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자웅을 겨룬 결과의 누적물이다.

북부 상공업자들을 대변하는 자본주의 세력과 남부의 농장주 출신이 많은 민주주의가 대립한 최초의 사건은 중앙은행 설립.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비롯한 자본주의 세력은 국립은행 설립을 지지한 반면 국무장관 토마스 제퍼슨 중심의 남부 출신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국립은행 설립을 ‘북부의 뜨내기 자본가들이 연방을 장악하려는 음모’로 여긴 것이다.

대치하던 양쪽은 타협점을 찾아내 1791년 2월 25일, 미국 의회가 합중국은행 설립안을 통과시켰다. 특징은 존속기한. 20년만 영업한다고 못 박았다. 중앙은행 설립에 반대하는 남부 출신 민주주의 세력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해밀턴은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끝까지 타협하고 설득해 ‘합중국 은행’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합중국은행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예기치 않던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정당은 절대군주의 신임을 차지하려는 신하들 간의 유치한 편가름’이라고 여겨 정당이 없었던 미국에 정당이 생긴 것. 은행 설립에 찬성하던 자본주의파(연방파)는 연방당으로, 민주주의를 중시하던 반대파(주권파)는 민주공화당으로 갈라졌다. 연방당은 오늘날 공화당의, 민주공화당은 민주당의 뿌리다.

주당 400달러씩 총 2만 5,000주를 발행해 당시로서는 미국 최대 규모인 자본금 1,000만 달러 짜리 합중국은행은 존속 기한인 1811년 다수당으로 올라선 민주공화당에 의해 폐쇄되고 말았다. 존속 기한 연장을 묻는 상·하원 투표에서 각각 한 표씩 모자랐다. 치열했던 투표가 말해주듯 중앙은행의 필요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고개를 들어 1816년에는 ‘제2 합중국은행’이 문을 열었다.

1차와 마찬가지로 영업시한 20년을 조건으로 개설된 제2차 합중국은행의 운명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연방정부의 지출을 아끼고 국유지를 팔아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국채 제로(0) 시대’를 잠시 누렸던 앤드류 잭슨 대통령에 의해 시한을 연장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잭슨(민주주의파) 대통령과 금융자본가(자본주의파)의 갈등은 ‘은행 전쟁’으로 비화해 은행가들의 고의적인 대출 축소와 공황까지 낳았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자본주의의 압력에 시달렸다. 남북전쟁 중반이던 1863년 2월 25일 서명한 국립은행법(National Bank Act)이 대표적인 케이스. ‘자본의 3분의 1을 재무부 채권(TB)에 투자하는 은행은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게 골자인 이 법에 링컨은 마지못해 서명했다고 전해진다. 의회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상원 표결에서는 23대21, 하원에서는 78대64로 간신히 통과됐다.

반대가 많았던 이유는 같은 북부를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은행(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컸던 탓이다. 민간은행들이 정부에서 발행하는 그린백과 똑같은 형태의 화폐를 발행할 권리를 가질 경우 화폐주조 차익을 누리기 위해 통화를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링컨도 같은 생각이었으나 당장 전쟁에 쓸 돈이 급했다.

3억 달러가 발행된 불태환지폐 그린백의 추가 발행(1억5,000만달러)이 의회의 반대로 막혀 있던 상황. 조속한 전쟁 비용 결제가 아쉽던 링컨은 의회가 그린백 추가 발행안에 동의한다는 조건으로 국립은행법을 받아들였다. 은행들을 감독하기 위한 통화감독청(OCC) 신설이라는 보호장치가 마련됐지만 은행들은 화폐발행권을 마음껏 누렸다.

민간의 화폐발행은 구조적 국가채무로 굳어졌다.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남북전쟁 직후 연방정부의 재정이 오랫동안 흑자를 기록했는데도 국가채무가 줄지 않은 것’을 채무가 감소해 재무부 채권이 부족해지면 화폐발행의 기반이 흔들릴 것으로 우려한 민간은행들의 입김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습관으로 굳어진 적자에 대한 무감각 탓일까. 미국의 부채는 증가일로에 뾰족한 답도 없다. 18.9조 달러에 매초 마다 2만7,600 달러씩 불어난다.

국립은행법에 의한 민간은행의 화폐발행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5년 폐지됐으나 그 흔적이 미국의 중앙은행제도에 깊게 남아 있다. 중앙은행을 정부가 아닌 자본가들이 설립하게 된 점 자체가 은행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오늘날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월가의 형편은 어떤가. 견제와 세력 균형이 있을까. 민주에 의한 자본 통제는 기능하고 있을까. 글쎄다. 미국 건국 초기처럼 금융과 화폐제도가 정치권 판도와 쌍둥이같이 엮여 돌아가던 시절이 오히려 더 나았는지도 모르겠다./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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