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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은 칠순의 노작가에게도 삶의 질문을 던졌다. 지난 2014년 말 위암 수술을 받고 퇴원한 '트위터 대통령' 소설가 이외수(70·사진)는 조급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고비의 연속인데 서둘러 이 고비들을 앞당겨 넘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는다. 특유의 위트를 담아 '못 먹어도 고(苦)'인 삶에서 빨리 이루려는 욕심을 버릴 것을 주문한다.
연초 폐 기흉 때문에 다시 병원 신세를 지고 퇴원한 그가 최근 경기 성남시의 행복아카데미 강연자로 나섰다. 보행이 힘겨워 보일 정도로 쇠약했지만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머리와 턱수염을 자른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는 "여유를 가져야 위기에 대처할 자신감이 생긴다"며 "청년들이 경쟁에서 뒤져 열등감을 갖기 쉽지만 그들에게 그럴수록 서두르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인생이 많은 꿈을 가진 10대의 다몽기(多夢期), 꿈을 선택하는 20대 선몽기, 정성과 마음을 바쳐 노력하는 30대 정진기를 넘어 꿈이 실현되는 40대 용비기(龍飛期), 그리고 인생을 노니는 50대 이후의 소요기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30대에 10년을 바쳐 열심히 정진하고 나머지 인생을 누린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닐 것"이라며 "하지만 40~50대에나 결실 볼 일을 청년들에게 당장 이룰 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인간은 행복하다'는 명언을 인용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측은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암 수술을 받고 투병한 곳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강원도 화천에서 멀지 않은 춘천의 한 병원이다. 대부분의 암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 맨 먼저 현실 부정의 심리적 상태를 보인다. 그도 확진 후 수많은 지인에게 더 나은 병원에 갈 것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그는 "당시 춘천의 병원 의료팀을 굳게 믿었고, 그래서 거기서 병을 이겼다"고 술회했다. 긴 머리와 턱수염도 수술에 방해가 될 것 같아 의료팀이 괜찮다는데도 자진해 깨끗이 잘랐다. 그는 "용기와 자신감을 준 집도의와 환자를 정성껏 돌본 간호사들 덕분에 나은 것"이라며 "그 의료진처럼 남의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장인정신이며 이것이 곧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를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믿음은 투병 후 수필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을 집필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는 "약자도 손잡고 같이 가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라고 볼 때 생존 경쟁이라는 말은 동물 세계에나 어울리는 말"이라며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우리 교육의 방향부터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수는 1972년 등단한 후 40여권의 책을 내며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쉬운 말로 세상과 소통해 트위터 팔로어도 170만명을 넘는다.
그는 "40여년간 '글밥'을 먹고 있는데도 여전히 작가로서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에 지금 떠난다 하더라도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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