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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극장가에 귀향, 동주 등 '작은 영화'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좋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지지와 성원이 결국 스크린 독과점 같은 자본의 힘을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25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한국영화 '귀향'이 개봉 첫날인 24일 하루에만 총 16만 5,815명의 관객몰이에 성공, 일일 극장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제작비 25억원의 작은 영화가 팬층이 두터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데드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와 경쟁에서 이기는 쾌거를 거뒀다. '귀향'은 예매율에서도 개봉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 이번 주말 손익분기점인 60만 관객을 넘어서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귀향'의 뜻깊은 성공에는 관객의 힘이 있었다. '귀향'을 더 많은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관객들의 의지와 청원 운동 등 응원은 실제 예매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현직 고등학교 한국사 교사가 사비를 털어 서울 강남의 복합상영관 5개관(434석)을 통째로 빌려 무료 관람행사를 진행한 일도 있었다. 여느 작은 영화들처럼 시사회 당시 50여곳의 상영관만을 겨우 확보했던 영화는 점차 상영관을 늘려 갔고 첫날 511곳에서 영화를 틀 수 있었다. 배급사의 목표 스크린 수인 300개를 훌쩍 뛰어넘는 성공이다. '귀향' 측 관계자는 "개봉 열흘 전쯤 메가박스 한 곳에서만 사전 예매를 풀었는데 예매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며 "보고 싶은데 극장이 없다는 입소문이 돌며 관객들의 청원 운동이 이어졌고 롯데와 CGV 등의 극장 사업자들도 차례로 상당한 수준의 스크린을 내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7일 개봉한 '동주' 또한 관객들의 지지로 스크린 수를 늘려가고 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담은 이 영화는 개봉 첫날 374개 스크린에서 시작했지만, 관객의 호응이 이어지며 현재 100여개 가량 더 늘렸다. 특히 '동주'는 다양성영화의 기회를 빼앗지 않겠다며 CGV아트하우스 등 전용관에서 개봉하지 않고 일반 영화관에서 경쟁한 결과라 더 의미가 깊다.
두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도 기존 상업영화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끈다. '동주'의 경우 윤동주 시인의 삶을 영화화한다는데 배우와 제작진 모두가 공감, 사전 출연료와 연출료 등을 거의 받지 않았다. 감독·배우·스텝 모두 흥행 결과에 따라 수익을 나누는 러닝개런티 방식으로 계약해 제작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약 5억원이라는 저예산을 들여 제작된 영화는 지난 22일 손익분기점인 27만여 관객을 넘어섰고 24일 현재 38만3,447명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귀향'은 관객의 힘이 없었으면 애당초 만들어질 수도 없었던 영화였다. 구상은 이미 14년 전 시작했지만 투자를 받지 못해 제자리걸음을 하던 영화가 7만 5,000여 국민의 십시일반 후원으로 제작비의 50%인 12억 원을 모아 완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검사외전' 등으로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또 나오는 등 영화 볼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극장에 대한 관객들의 반발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라며 "'동주', '귀향'의 성공은 관객들의 힘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 있는 선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제공=각 배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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