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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지난 2010년 아프가니스탄 국제안보지원군의 스탠리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아프간 정부 각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아버지는 (아들인 나 말고도) 아프간 전장에서 싸우는 조카가 둘이나 있습니다."
아프간 전쟁에서 정부군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정부 고위직 모두가 가족을 해외에 도피시킨 자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을 꼬집은 대목입니다. 하긴 대통령부터 두 자녀를 미국으로 보내놓고 있는데다 부통령 가족은 터키와 이란에, 총리 가족은 인도에 살고 있었다는군요. 차관들과 일부 청장급 가족들도 모두 해외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니 대리전쟁을 치루고 있는 미군 사령관으로서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측면에서만 본다면 미군 장교들은 진정으로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 집단입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입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미국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 당선된 직후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때마침 그의 아들 존 소령이 참전 중이어서 잠시 짬을 내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젠하워 당선인은 아들을 보자 "네가 포로로 잡히면 나는 사퇴해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혹시라도 자기 자식 때문에 미국 정부에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러자 아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아버지를 안심시킵니다. 하지만 존 소령은 나중에 이렇게 속을 털어놓았습니다. "적에게 포위될 경우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45구경 권총으로 적군 몇 명과 나 자신을 쏠 작정이었다."
6·25전쟁에는 수십만명의 미국 젊은이가 참전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장성급 지휘관의 2세들도 대거 섞여 있었죠.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의 아들 샘 워커는 육군 대위였고 제1해병 사단장의 아들도 해병대 소령이었습니다. 참전한 장성의 2세는 모두 142명이었고 이 가운데 35명이 전사 또는 부상 당했습니다.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중국 언론이 한미 양국을 향해 도발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동북지방 군사배치 강화론'이나 '한국동란 대비론'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이 같은 논리는 자칫 김정은 정권의 급변 사태가 발생하거나 남북한 간 물리적 충돌이 격화할 경우 중국 군대의 북한 진주 가능성까지 내포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그런 물리적 충돌이 쉽사리 벌어질 것으로 보지는 않으나 세상일 어찌 알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마음의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겠죠.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고대 로마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의 격언이 어느 때보다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물론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전쟁이라도 하자는 거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북의 핵·미사일 개발 집착이야말로 핵폭탄 사용 카드를 흔들어 유사시 미군의 한반도 증파(增派)를 차단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음이 분명해집니다. 북의 핵 도발에 끝까지 맞서겠다는 국민적 결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자원입대해 최전방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습니다. 병장 제대했으니 M-16 가늠자 조정이나 수류탄 안전핀 뽑기에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늙은 병사들이 30분이든 1시간이든 전장을 버티면서 젊은 장병들이 반격 태세를 갖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지나치게 호전적이라고요? 경제가 무너지면 우리는 끝장이라고요? 물론 그런 주장도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만 다른 논리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경제 논쟁에서 영국의 애덤 스미스와 대척점에 섰던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도 경제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는 점에서는 스미스와 의견을 같이한 바 있습니다.
"힘은 재화보다 중요하다. 힘의 반대인 허약은 이미 획득한 재화뿐 아니라 우리의 생산력, 우리의 문명, 우리의 자유, 그리고 필경 우리의 독립마저 힘이 우세한 측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북의 핵 공갈과 중국의 조건반사적인 대화 공세에 대한민국의 안보가 농락당해야 할까요.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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