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는 영화사에서 기억될 최고의 작품이다. 초월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4전 5기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사내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담담한듯했지만, 얼굴은 붉게 상기됐다. 시상식을 찾은 동료 배우들은 마치 제 일인 양 기립하며 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28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상은 ‘스포트라이트’에 돌아갔고, 여우주연상은 ‘룸’의 브리라슨, 남녀조연상은 각각 ‘스파이 브릿지’의 스틸 마크 라이런,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가져갔다. 레버넌트 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는 지난해 ‘버드맨’에 이어 2년 연속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상 등 6개 부문을 싹쓸이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이번 시상식은 ‘기승전디(디캐카프리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디캐프리오의 수상에 이목이 쏠렸다. 디캐프리오는 1994년 ‘길버트 그레이프’를 시작으로 애비에이터, 블러드 다이아몬드,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네 차례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도전했지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섯 번째 도전인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는 시카고 비평가협회상,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연달아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기대감을 한껏 높였다. ‘레버넌트’는 서부 개척시대 이전인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배경으로 사냥꾼인 휴 글래스의 복수극을 그린 작품이다. “이쯤 되면 (상을) 줄만도 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연기력으로 극찬을 받았지만, 영화 ‘대니쉬 걸’로 세계 최초의 성전환자 역을 맡아 고난도 연기를 펼친 에디 레드메인이 복병으로 부상했다. 레드메인은 지난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 역을 완벽히 표현해내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이 때문에 디캐프리오의 4전 5기 신화냐 레드메인의 2연패냐가 이번 시상식의 뜨거운 감자였다. 심지어 디캐프리오가 오스카상 수상을 방해하는 사진기자와 레이저 방해물을 피해 레드카펫을 질주하는 ‘레오의 레드 카펫 광란’이란 게임까지 나왔을 정도다.
20여 년에 걸친 ‘오스카 징크스’를 깨부순 그는 환경 오염에 대한 소신 발언도 잊지 않았다. “레버넌트 제작은 인간과 자연이 호흡하는 과정이었다”고 운을 뗀 디캐프리오는 “이 작품이 촬영된 지난해는 세계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북극에서 얼음이 녹는 기후 변화가 있었다”며 “인류 모두가 직면한 위협이기에 인류가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 주제곡 ‘심플 송 #3’로 주제가상 후보에 올라 레드카펫을 밟았지만, 수상의 영광은 ‘007 스펙터’의 샘 스미스에게 돌아갔다. 이병헌도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자(외국어 영화상)로 무대에 올랐다.
한편, 백인들만의 잔치라는 오명을 쓴 이번 시상식에선 흑인 배우 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사회를 맡아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는 “흑인 후보자들이 대한 논란이 계속될 바에야 차라리 남녀 배우상 범주를 나누듯 흑인을 위한 상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연기로만 얘기하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근 2년간 남녀 주연, 남녀 조연 등 4개 연기 부문에 지명된 후보 총 40명이 모두 백인이라는 점이 논란이 되면서 흑인 배우와 감독들이 잇달아 불참(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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