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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선의 우리 술의 멋과 맛](15)이 또한 장쾌하지 아니한가

대신들에게 둘러싸인 샤를마뉴 대제와 앨퀸 사제 /출처: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프랑스 포도주 중에 헤밍웨이가 너무 좋아해서 손녀의 이름도 이를 따라 똑같이 지었다는 샤또 마고(Chateau Margaux)라는 술이 있다. 보르도의 마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최고급 포도주의 대명사가 된지 오래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 2005년 샤또 브리오 드 깡뜨낙 브라운 마고(Chateau Brio De Cantenac Brown Margaux)가 나왔는데, 영화 ‘퀸 마고(Queen Margaux)’에서 본 이자벨 아자니의 모습이 공연히 떠올라 매혹적이고 우아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포도주는 입 안에 꽉 들어차는 묵직함이 중후한 남성미를 느끼게 했다. 게다가 적(赤)포도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깔이 옅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술은 병에 담긴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검붉은 빛이 진하고 깊게 뿜어져 나왔다. 포도주는 마시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맛에 대한 견해가 천차만별이지만, 마시는 내내 받았던 느낌은 마치 영화, ‘데미지(Damage)’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중년 남성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그런 분위기의 술이었다.

한편 샤또 마고는 세계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면이 연출된 장소이기도 하다. 2차대전 직후 독일 총리가 프랑스인들에게 전쟁에 대한 사과를 했던 곳이 바로 이 샤또 마고이다. 포도주는 프랑스인의 마음속을 흐른다고 할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포도밭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마고 지역은 프랑스인의 자존심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정치·외교적으로 볼 때도 수도인 파리에서 사과를 하는 것보다 그 진정성이 훨씬 더 잘 전달될 수 있는 일이었다.

독일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를 흔연히 받아들여 준 프랑스인들은 이날 아름다운 포도밭에서 잔을 권하며 서로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을 터이다. 원한을 씻고 술잔을 높이 들어 대의로 향할 것을 약속했던 일. 이 얼마나 장쾌한 일이었던가.

유럽 여러 나라들은 따지고 보면 아주 먼 옛날,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가 건설한 프랑크왕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의 유럽통합(EU)이 있기 훨씬 전, 샤를마뉴가 제국을 건설하여 서유럽의 통합을 이루었던 일. 이 얼마나 장쾌했던 일인가. 아시아에서도 그보다 수세기 앞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만주와 시베리아로 거침없이 영토를 확장하며 광활한 제국을 건설하였던 일. 비록 거센 말발굽 아래 통합이었지만, 이 얼마나 장쾌했던 일인가. 샤를마뉴의 후예들이 유럽의 통합을 이루었듯이, 고구려의 후예들 역시 아시아의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



북한이, 일본이, 또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앞으로도 많은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인류공영을 품고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통합의 열매를 거둘 것임에 틀림없다. 그때가 되어 향기로운 술잔을 높이 들고, 모두가 협력하여 선을 이룬 기쁨을 누린다면... 이 또한 장쾌하지 아니한가.

광개토대왕릉비 탁본


내일은 3.1절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봉창 의사가 그 외 수많은 선혈들이 몸을 바쳤던 것은 비단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유서 깊은 술도가가 있어서, 늦었더라도 우리의 아름다운 황금 들녘에서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우리는 기쁘게 이를 받아들여, 평화의 술잔을 함께 높이 든다면... 이 또한 장쾌하지 아니한가. /이화선 사단법인 우리술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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