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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텍사스 공화국과 론스타…호갱





1836년 3월 2일, 코아윌라이 테하스주. 브래조스 강가의 창문 3개 짜리 통나무집에 모인 주민 대표들이 멕시코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했다. 대표들의 절대다수는 텍시안(Texian)이라고 불렸던 미국 출신. 멕시코 영토인 텍사스에 살던 미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이미 5개월 전부터 시작된 반정부 무력 투쟁이 이어지던 상황. 대규모 정부군에 맞서 모든 것이 불리하게 돌아가던 마당에 독립 선포 불과 나흘 뒤에는 비보가 전해졌다. ‘알라모 전투 패배, 민병대 전멸.’ 병력 189여명에 불과한 미국인 민병대가 1,800여명의 멕시코군에 끝까지 항거하다 전멸했다는 소식에 텍시안들은 ‘알라모를 기억하라’며 전의를 다졌다.

멕시코 정부군은 ‘미국이 배후조종하는 반란의 요새’를 점령한 여세를 몰아 워싱턴까지 진격하겠다고 기염을 토했으나 허풍이었다. 미국 본토 진격은커녕 알라모를 점령한 지 한 달 보름 뒤에 치러진 샌 하신토 전투에서 1,360명이라는 병력 우위에도 910명의 텍시안들에게 처절하게 패하고 말았다. 멕시코군 지휘관 산타 안나 장군마저 포로로 잡혔다.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대통령까지 지냈던 멕시코의 독재자 산타 안나 장군은 석방을 위해 모든 것을 던졌다. 테하스(텍사스의 옛 이름, 원주민 언어로 ‘친구’) 독립 인정의 조건은 단 한 가지. 미국 연방에 편입만큼은 수용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았다. 약속은 지켜졌을까. 반대다. 주지하듯이 텍사스 공화국은 론스타 공화국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 미국 연방에 편입돼 종국에는 미국 땅이 돼버렸다.

멕시코는 왜 땅을 잃었을까. 근시안적이고 변덕이 죽 끓는 듯하던 이민 정책과 고질적인 부정부패 탓이다. 멕시코가 광활한 텍사스 지역을 손에 넣게 된 시기는 1821년. 프랑스에 이어 텍사스 지역을 식민지로 거느리던 스페인에 항거해 독립전쟁에 승리하면서 영토로 굳혔으나 땅을 경작할 사람이 부족하자 신생 멕시코 정부는 미국 이주민들을 받아들였다.

개척 이민을 허용한지 얼마 안지나 미국 출신인 텍시안이 테하노(Tejano: 멕시코계 텍사스 주민)보다 많아지자 부랴부랴 이민 제한에 나섰다. 국경을 폐쇄 당한 미국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면서까지 ‘갈 곳이 없으니 땅을 부쳐 먹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멕시코는 또다시 빗장을 풀었다. ‘소작인’으로 들어온 미국인들의 행태는 바로 바뀌었다. 멕시코 정부의 노예 해방령에 불복하고 이주금지령도 귓등으로 흘렸다.

미국인들이 멕시코를 우습게 여긴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인구 분포가 순식간에 미국인 우세(텍시안 3만5,000여명, 테하노 7,800명)로 뒤집어지고 경제권을 휘어잡았다. 두 번째는 멕시코 정부의 무능과 부패. 아무리 멕시코 정부가 나빠도 연방의 일원으로 남자는 충성파 미국인도 적지 않았으나 법에 없는 세금을 매기고 걸핏하면 군인을 보내 윽박지르자 텍시안의 여론은 독립으로 기울어졌다.

알라모 전투에서 전멸 당하고 복수전에서는 크게 이겨 독립을 따냈어도 텍사스 공화국은 외톨박이였다. 멕시코와 관계는 원수지간으로 변했고 미국은 연방으로의 편입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 시절인 1827년 100만 달러에 멕시코를 사겠다고 제의하고 1829년에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매입가로 500만 달러를 들이밀었던 미국이 정작 미국 시민들이 피 흘려 따낸 텍사스주를 마다한 이유는 ‘갈등의 시한 폭탄’이었기 때문이다.



노예 문제를 둘러싸고 북부의 자유주와 남부의 노예주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에서 노예제도가 굳건한 텍사스를 연방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남북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은 텍사스 내의 분리독립파를 견제하고 연방편입파를 지원하는 정도에서 선을 그었다. 텍사스는 스스로를 ‘외로운 별(Lone Star)’로 여겼다. 국기도 독립 당시에는 군청색 바탕에 황금색 별이 하나 있는 ‘버넷기’를 채택했으나 1839년부터는 론스타기로 바꿨다.

텍사스의 연방 편입 문제는 미국 내에서도 골치거리였다. 1837년에는 텍사스 공화국의 대사가 마틴 뷰런 대통령에게 합병을 요청했으나 거부 당한 적도 있다. 멕시코와의 전쟁, 자유주-노예주간 갈등을 우려한 미국이 미적거리는 사이,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프랑스에 이어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텍사스 공화국을 승인하는 유럽 국가들이 늘어나고 영국이 텍사스와 절친한 관계를 맺자 미국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유럽 국가들이 텍사스와 관계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날로 부강해지는 미국에 대한 견제인 동시에 남부 국경으로부터의 안보 위협으로 여긴 것이다. 결정적으로 미국에 대한 일방적 구애에 불편해진 텍사스 공화국이 영국의 중재로 멕시코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도 더 이상 텍사스 문제를 놔 둘 수 없었다.

결국 미국 상하원 투표와 텍사스 주민 투표를 거쳐 텍사스 공화국은 1845년말 미국 안(28번째 주)으로 들어왔다. 텍사스 공화국의 부채 1,000만 달러를 연방이 변제하는 조건이 붙어 미 연방의 텍사스 편입은 새로운 출혈을 불렀다. 텍사스의 미 연방 편입을 영토 강탈로 간주한 멕시코가 항의하는 가운데 텍사스와 멕시코간 국경을 확대 해석한 미국 기병대가 멕시코 영토에 진입한 사건을 계기로 전쟁이 터졌다.

멕시코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전쟁이었으나 병력도 장비도 미국의 상대가 못됐다. 2년간 이어진 전쟁의 결과 1848년 체결된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 넓이보다 6배나 큰 136만㎢의 멕시코 땅을 새로 얻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유타·애리조나뿐 아니라 뉴멕시코·와이오밍·콜로라도의 일부까지 미국 영토로 들어왔다. 리오그란데강을 경계로 하는 미국과 멕시코간 국경도 이때 그어졌다. 패전국 멕시코가 받은 대가는 1,500만달러.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으나 멕시코는 두고 두고 땅을 쳤다. 종전 직후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에서 1848년부터 10년간 채굴한 금(金)의 가치만 약 10억 달러. 미국 유전의 대부분이 텍사스를 비롯한 옛 멕시코 영토에 분포한다. 텍사스주는 오늘날도 번영 가도를 달린 미국 50개주 가운데 인구와 크기에서 2위다. 텍사스 유전은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대멕시코 전쟁의 승리는 미국의 정치·외교·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협상보다는 무력에 의존한다는 호전적 기질이 공공연히 튀어나오고 중남미를 안방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승자에게는 행운도 따랐다.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의 비옥한 땅을 획득한 뒤에는 서부를 향한 포장마차 대열이 꼬리를 물며 서부 대개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동부부터 서부까지 미국의 번영 뒤에는 친구(테하스)로 받아들인 미국인들에게 얻어터지고 빼앗긴 멕시코의 회한이 서려 있는 셈이다. 자신의 과거 때문인지 요즘 미국 백인사회는 히스패닉(중남미 출신) 인구 급증에 떨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만약 미국 경제가 휘청거려 텍사스에서 멕시코인들이 독립을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사의 반전 가능성이 흥미롭다.

론스타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탈세 의혹 속에 천문학적 차익을 거두고도 한국 검찰의 영창 청구를 네 번이나 물리쳤던 론스타펀드의 뿌리가 텍사스 자본이다. 한국과 론스타펀드 간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당시 장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일부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소송이 또다시 6개월 뒤로 미뤄졌다. 론스타펀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은 규모가 5조 원이 넘는 초대형이건만 우리 측의 사정 때문에 다시금 6개월 연장됐다니 앞으로의 전개에 신경이 곤두선다. 론스타의 역사 속에 들어있는 막무가내와 뻔뻔함, 무지막지함을 알기에…. 정녕 한국도 멕시코처럼 론스타의 봉이 되고 말 것인가.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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