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수줍음으로 그를 맞았으나…
“이룰 수 없는 만남이었다. 그녀는 수줍음으로 그를 맞이했으나, 그는 끝내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영화 ‘화양연화’는 오프닝 자막부터 엇갈릴 수밖에 없는 남녀의 인연을 암시한다.
남자와 여자는 1962년 홍콩의 한 아파트에 같은 날 이사 오면서 인연을 맺는다. 남자는 신문기자 차우(량차오웨이), 여자는 무역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장만위). 두 사람은 이사 첫날부터 이상하리만치 자주 마주친다. 서로 옆집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일도 적지 않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두 사람 모두 배우자가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는 점. 일본계 무역회사를 다니는 수리첸의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고 차우의 아내 또한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수리첸은 남편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견디기가 힘겹다. 어쩌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몸에 착 달라붙는 치파오로 몸을 치장하는 것도 마음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이웃들이 아무리 “청상과부가 따로 없지, 늘 저렇게 입고 다녀요?”라는 식으로 뒷담화를 해도 수리첸은 치파오 차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불륜’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고
외로움이라는 닮은꼴 탓일까. 차우와 수리첸은 갈수록 만남이 빈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커피숍에 마주앉게 되고, 거기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한다. 차우는 수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의 것과 같은 제품임을, 수리첸은 차우의 넥타이가 남편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놀라움과 동시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핸드백은 어디서 샀죠?”(차우) “남편이 해외에서 사다 줬어요.”(수리첸), “타이는 어디서 샀나요?”(수리첸) “아내가 해외에서 사다 줬지요.”(차우) 그렇다. 불길한 예감대로 상대의 배우자가 서로 눈이 맞아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간통죄폐지로 관련 주식 급등
차우의 넥타이와 수리첸의 핸드백은 상대에게 불륜의 징표이자 충격 그 자체다. 하지만 소비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불륜으로 인해 추가의 소비가 발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도 있다. 불륜이 소비를 촉진한 셈이다. 이처럼 불륜은 때로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듯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해 전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나온 2015년 2월 26일 즈음에 불륜이 가져다 줄 경제효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것도 그런 경우다. 간통죄폐지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판결 직후 콘돔회사의 주가가 상한가로 직행했다. 등산복·속옷·피임약·여행사 등도 이른바 ‘간통죄폐지 수혜주’를 형성하며 상승곡선을 그렸다. 심지어 미사리와 같은 불륜의 명소의 땅값이 들썩이면서 간통죄폐지가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할 것이라는 논리적 비약까지 횡행했다.
#불륜의 경제효과는 어불성설
해외에서는 불륜 자체를 사업화하는 사례가 나타난지 이미 오래다. 기혼자를 회원으로 받는 이성교제 웹사이트 ‘애슐리 매디슨’가 대표적이다. 2001년 캐나다에서 개설된 애슐리 매디슨은 전 세계 4,0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불륜의 경제효과를 계량화한 경제학자도 있다. 미시건대의 저스틴 울퍼 교수는 불륜에 따른 이혼으로 인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효과가 0.12%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불륜의 경제효과는 어불성설이다. 불륜을 필시 가정파탄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정신이 피폐해진 직장인들은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워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륜이 자녀에게 미치는 악영향은 장기적인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대하다. 불륜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이혼 변호사를 고용하는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느라 돈주머니가 말라서 새 차 구입이나 외식 등의 소비 여력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한 때나마 ‘불륜의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가 들끓었다니, 뒷맛이 씁쓸하다. 오죽 경기침체가 지독하면, 오죽 경기활성화의 불쏘시개가 아쉬웠으면 불륜에까지 희망을 걸었겠는가.
영화 ‘화양연화’에서 불륜의 문턱까지 섰던 두 사람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면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 현실을 보면 극심한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국회는 서로를 책잡느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본분까지 잊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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