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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현관문을 열자 모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 모기를 잡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지카 바이러스 때문이다. 지카 바이러스는 중남미, 미국 남부나 아프리카, 동남아 지역 등에서 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데 일반인도 위험하지만 임산부의 경우 소두증을 가진 아이를 출산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또 지카 바이러스가 혈액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름에 열리는 브라질올림픽의 정상적 개최 여부에 관심이 쏠릴 뿐 아니라 콘돔이나 모기구충제 관련 기업의 주식이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이래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등이 연달아 발생했던 국가적 재난의 기억이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
소위 호환 마마의 위협이 사라진 뒤 우리 사회가 이토록 감염병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무엇 때문에 감염병이 사회에 불안을 줄까. 이유는 치사율과 함께 감염경로나 진행경로 예측이 쉽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이다. 아마 전파경로나 위험성·예방법 같은 사안에 대해 시원하게 대답해줄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우리의 불안은 조금 누그러지리라. 2월 정부는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의 연구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와 농림축산식품부·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는 공동으로 오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에 걸쳐 총 9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사업에서는 감염병에 대한 감시·역학, 기초·기전, 진단, 치료제·소독제·백신, 인프라 분야 관련 연구개발이 진행된다. 미래부는 지난달 지카 바이러스의 특성과 임상 연구 및 현장 신속진단 키트 개발을 위한 신규 과제 공모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근 중남미 현지에서 신생아 소두증 급증이 지카 바이러스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서 지카 바이러스를 포함한 각종 감염병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안감을 종식시키기 위함이다. 더욱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보건의료나 사회학적 빅데이터 기반의 인수공통감염병 연구가 진행된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필자가 속한 계산과학연구센터와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빅데이터를 병원 내 감염 예측, 중환자실, 응급환자 코호트 분석(Cohort Analysis) 등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빅데이터를 단순평가나 분석자료에 한정해 사용하기보다 선제대응을 위한 감염병 예측 수단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한 지역의 감염병 전파 양상을 문화·지리·사회 등 다차원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기존의 방식을 통한 수동적 감염병 관리를 넘어 적극적이고 복합적으로 질병 전파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서울시는 심야버스 노선을 결정하거나 과속방지턱의 입지와 음주운전 단속지역 등을 선정하는 데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특히 하루 평균 2,100여명의 시민이 이용하는 심야버스는 빅데이터 활용으로 버스 시스템과 도시 교통망의 효과적인 이용을 제고하였다. 또 과속방지턱을 효과적으로 설치해 전체 교통사고의 60%를 줄이기도 했다. 이처럼 빅데이터 분석과 해석은 데이터 과학의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 정책적 함의를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기의 이동행태 자료를 수집하고 서울시내 교통흐름과 인구이동을 활용하면 지카 바이러스의 전파양상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다. 즉 기존 빅데이터 분석이 기존 자료의 해석과 함의 도출에 머물렀다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새로운 빅데이터 분석은 '예측'과 '정책실험'의 도구가 된다. 향후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그 동선을 바탕으로 전파를 예측해 격리지역을 미리 선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재난 수준의 감염병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우리에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끼치는 신종플루나 조류인플루엔자뿐 아니라 구제역 등의 창궐에도 실험 데이터보다 빠른 예측결과로 선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운 KIST 계산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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