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 분야라고 다를 것은 없다. 피 대신 전기가 흐를 뿐, 로봇 아티스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무대에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한 남자 연예인이 드라마에서 선보인 기계 같은 표정과 말투에 네티즌은 ‘로봇 연기’라는 말을 붙여줬다. 그런데 실제로 연기를 하는 로봇이 있다. 주인공은 세계 최초의 로봇 여배우인 일본의 제미노이드 F. 젊은 동양 여성의 얼굴을 한 이 로봇은 원격 조정으로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표정 연기를 하고, 말도 할 수 있다. 이 여배우는 2010년 ‘사요나라’라는 연극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성의 간호 로봇으로 등장해 시를 읊어주는 역할을 했고, 이 작품으로 2013년 한국을 찾아 공연을 펼친 바 있다. 지난해엔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끝까지 주인을 지키는 간호 로봇을 연기하며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아직까진 연기력보단 신기함이 더 큰 게 이 배우의 한계다. 또 한 가지, 걷지 못한다.
부단한 연습과 곡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필수인 피아노 연주도 로봇이 한다. 2011년 개발된 이탈리아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는 클래식, 재즈,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명곡을 1,000곡 넘게 친다. 강약·속도 등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주요 기술도 100여 개 이상 탑재하고 있다. 53개의 손가락을 지닌 이 예술가는 이탈리아의 ‘인간’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와 전 세계를 돌며 ‘인간 대(對) 로봇의 연주 대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테오 트로니코는 악보 상의 지시를 따르면서, 로베르토 프로세다는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같은 곡을 연주한다. 이후엔 서로의 연주를 평가하며 토론도 벌인다. 잘 나가는 둘은 5월 16~20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클래식 콘서트로 이 지역 학생들과 만나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친다. 승자를 정하는 일은 관객의 몫이다.
예술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낸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작품을 매개로 감정을 공유하며 치유 받는 일종의 소통인 셈이다. 로봇이 과연 이 역할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전 인류가 수천년간 축적한 지식을 작은 칩에 단 몇 초 만에 저장하는 존재에게서 부단한 노력과 성취, 거기서 오는 감동을 얻어갈 수 있을까. 대사든 연주든 실수해도 좋으니 관객과 함께 웃고 울고 나이 먹는 이가 무대의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게 로봇에겐 없는 ‘인간미’ 아니겠는가.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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