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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판이었나.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9단과의 지난 9·10일 대국에서 내리 '불계승'을 거뒀다.
당초 '이 9단이 우세할 것'이라던 목소리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도전) 매치'가 실은 처음부터 '이세돌 챌린지 매치'였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이 9단은 10일 "한 번이라도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허탈해 했다.
최종 결과와 관계없이 알파고는 이미 한국에 'AI 쇼크'를 불러왔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구글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알파고 마케팅'의 눈부신 승리다.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대국 전 기자간담회에서 "경우의 수가 10의 170승으로 우주의 원자 수 이상이어서 계산과 직관이 모두 적용되는 심오한 게임"이라며 바둑을 치켜세웠다. 그런 바둑에서 인간을 꺾었으니 알파고는 이제 단숨에 세계 최상위 AI 프로그램 반열에 오르게 됐다.
'숙적' 애플을 비롯해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 경쟁자들에게 보기 좋게 한 방을 날렸다. 이미 자율주행차나 가상 비서(구글 나우), 사진 속 인물 식별(구글 포토) 등 기술을 가진 구글이 알파고로 AI, 나아가 융합 신산업에서 글로벌 선두임을 확실히 각인시킨 것이다.
하지만 구글이 바둑을 AI 홍보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구글 마케팅에 너무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한얼의 전석진 변호사(IT 전문)는 "광케이블 인터넷으로 컴퓨터 자원을 무한정 사용하는 알파고는 사실상 무제한의 '훈수꾼'과 함께한다"며 "바둑에 대한 모독"이라고 일갈했다.
물론 우리가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AI의 위력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며 '매를 먼저 맞은' 셈이다. AI를 비롯해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융합 신산업의 투자 확대는 물론 민간으로의 확산 속도를 높일 계기로 삼아야 한다. AI가 정말 일자리를 없앨지, 아니면 부가 직업군을 늘릴지를 따져보고 내친김에 사회적 'AI관'을 고민해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정보산업부=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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