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은 12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바둑대결인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 3국에서 176수 만에 돌을 던지며 알파고에 불계승을 안겼다. 알파고는 앞서 9일과 10일의 1~2국에서도 이세돌에게 불계승을 거둔 상태다.
우승상금 100만 달러는 5판 3선승을 따낸 알파고에게 돌아가게 됐다. 상금은 유니세프와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된다. 양측은 상금과 관계 없이 남은 두 차례의 대국을 각각 13일, 15일 치른다.
이세돌은 비록 3연패했으나 1~2국때 보다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 경기에서의 패인이 초반 기선을 제압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보고 과감하고 주도적인 전법으로 경기 초부터 알파고를 압박했다. 또 후반에는 패 싸움을 거는 데 성공해 알파고가 패와 같은 난전에 약하다는 점을 파악하게 됐다. 중반으로 갈 수록 과감한 흔들기도 이어져 이세돌 다운 바둑이 되살아났다는 호평도 받았다. 다만 알파고는 이세돌의 전격적인 승부수에 대응해 기보에선 찾기 힘든 의표를 찌르며 반격을 했고, 일부 패싸움은 피해 흘려내면서 게임의 주도권을 쥐었다. 이세돌이 게임 후반 몇 차례 집중력을 잃고 실수를 둔 것과 제한시간을 조기에 소진해 초읽기에 보다 빨리 몰린 점도 패인으로 꼽혔다.
이번 대국은 초반부터 긴박하게 돌아갔다. 흑돌을 쥔 이세돌은 우상귀 화점으로 첫 돌을 놓았고 1분여 뒤 알파고가 우하귀에 화점으로 맞섰다. 해설자들은 알파고의 첫 수에 대해 도저히 인간이라면 두지 않을 수라며 그림(기보의 전체적 모양새)이나 정석 기보를 중심으로 사고하기보다는 확률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보다 안전한 수를 찾는 컴퓨터의 특성이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세돌이 좌상귀 소목으로 세번째 수를 두자 좌하기 화점으로 대응했다.이세돌의 초반 승부욕은 5수째부터 본격화했다. 그는 다섯번째 수에서 날일자로 조상귀를 펼쳤고, 알파고가 대응수를 두자 이세돌은 다시 상변에 중국식으로 포석을 놓는 전술로 밀어붙였다. 알파고는 우상귀를 날일자로 걸친 뒤 우하귀를 눈목자로 굳히는 새 포석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세돌은 지난 두 차례의 패인을 동료 기사들과 적극 연구해 세번째 대국에선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펼쳤다. 알파고 역시 기존 두번째의 대국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이며 의표를 찌르기도 했다. 특히 30번째수에선 흑돌에 대응해 약 10초만에 백돌을 둬 해설자들을 놀라게 했다. 알파고는 그간 한 수를 두기 전에 보통 1분 이상의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경기 시작 약 1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알파고의 역습에 밀려 궁지에 몰리는 듯했다. 이세돌은 수 차례 알파고를 흔드는 회심의 수들을 날렸으나 알파고가 기보에서 찾기 힘든 의외의 수들을 던진 것이다. 30번째수를 넘어가면서 이세돌 9단이 수세로 돌아서는 듯했다. 40수를 넘어가면서 이세돌의 좌변에서 불리한 상황에 몰렸다. 이세돌은 지난 두 차례의 대국 패인을 동료 기사들과 절치부심 연구해 초반에 기선을 잡아야 한다는 결론을 가지고 이번 승부에 임했다. 이에 맞서 알파고는 특유의 ‘족보 없는 확률 바둑’을 냉정히 펼치며 이세돌의 공격을 피해갔다.
이세돌은 좌상변에서 수세였지만 알파고에게도 녹녹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세돌의 흑돌은 초반 좌상변을 중심으로 한 국지전에 집중하며 알파고의 백돌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끊어가는 데 집중했는데 이것이 알파고 특유의 기풍을 어지럽히는 묘수가 됐다. 이 같은 근접전은 대국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바탕으로 경우의 수를 줄여가며 계산 가능한 시나리오를 단순화해 확실성을 높이려는 알파고 특유의 기풍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세돌식 복잡성, 모호성의 근접전은 대국 초반 좌상변에 이어 좌하변으로 확전됐다가 70수대 중반부터는 우하변으로까지 번졌다. 일종의 흔들기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에는 찾기 힘든 의표를 찌르며 맞대응을 펼쳐 집의 수에선 이세돌보다 우위에 서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세돌은 특유의 과감하고 적극적인 공세를 이어갔다. 지난 1국, 2국때에는 보기 힘들었던 이세돌식 바둑이 살아났다는 해설가들의 평가가 잇따랐다.
이후 대결의 백미는 ‘패’ 싸움이었다. 반상을 둘러싼 입신과 기계의 세계적 대결이 전례 없는 새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오로지 확률만을 쫓아 안전한 바둑만을 둬온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 천재 이세돌 9단이 던진 ‘패’ 싸움에 스스로 몸을 던지며 난전 속에 빠져들게 됐다. 패란 바둑판 위에서 양측 선수가 각자 단수에 몰린 상황에서 꼬리 물듯 서로를 상대방의 돌을 잡아먹는 난전으로 이끄는 형세를 뜻한다.
이세돌은 120수를 전후로 우하변 등에서 본격적인 패를 쓰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이 같은 이세돌의 승부수를 피하지 않고 중후반 잠시 정면으로 받았다. 3국 초반까지만 해도 패를 피하며 확률적으로 불확실성이 적은 안전한 바둑을 선호했던 알파고가 전에 없던 기풍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내 다시 패 싸움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세돌은 적극적으로 패를 만들며 알파고를 적극 압박했으나 이미 집수에서 상당히 밀리 터여서 승부를 뒤집진 못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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