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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이너스 금리에도 '유동성 함정'

풀린 돈, 소비·투자 대신 금고 속으로

그나마 도는 자금은 '나쁜 투자' 몰려

돈 풀기보다 기업투자 환경 개선 절실


깊어지는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각국 중앙은행들의 통화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올 들어 1월 말 일본은행(BOJ)이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가뜩이나 마이너스인 예치금리를 -0.4%로 0.1%포인트 더 떨어뜨리는 한편 기준금리도 제로로 낮췄다. ECB는 월 600억유로인 채권매입 규모를 800억유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화살'과 '바주카포'를 쏘아 대면서 천문학적인 돈풀기에 나선 목적은 침체된 경기 살리기다.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춰 시중에 돈을 풀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 경제의 혈액순환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런데 시장은 중앙은행들의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천문학적으로 풀린 돈이 돌지를 않고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의 고정자산 투자가 늘어나야 하고 가계의 구매행위가 활발해져 소비가 늘어야 하는데 시장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화폐의 가치가 감소해서 저축을 하느니 소비를 해야 하지만 오히려 돈이 숨고 있다. 실제로 BOJ가 금리를 마이너스로 떨어뜨리자 아이러니하게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상품은 금고다. 돈을 풀었는데 소비는 하지 않고 대신 장롱 안에 돈을 쌓는 사람만 늘었다는 얘기다. 소비가 늘지 않으니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이는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며 실질임금 감소를 가져와 다시 소비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다.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는다는 것은 기업이나 가계 모두 그만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반증이다. 하루 1만원을 버는 사람이 내일 2만원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는 소비를 늘릴 것이다. 반면 2만원을 버는 사람은 내일 소득이 1만원으로 줄 것을 걱정한다면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은 넘쳐나지만 그 돈이 돌지 않고 시장에서 퇴장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나마 퇴장하지 않은 돈들조차 '나쁜 투자(malinvestment)'로 몰리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껏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더니 생산적 투자와 소비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투기만 느는 것이다. 대표적인 현상이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다. 경기침체로 미래가 불안해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축적해야 하지만 은행에 돈을 저축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결국 시중의 넘치는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모여들면서 이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부동산 버블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미국을 중심으로 불어닥쳤던 셰일오일 붐 역시 저금리 정책이 낳은 나쁜 투자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블룸버그는 최근 값싼 셰일오일 붐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로금리 정책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값싼 이자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투기 자금들이 리스크로 가득 찬 셰일업체들에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4분기 셰일업체들의 부채는 2,35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에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치킨게임까지 더해지면서 유가가 바닥을 기자 셰일업체들은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단기 부동자금은 약 931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1년 새 17.2%나 증가한 것으로 연간 증가율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막대한 유동성에도 소비자의 지갑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위축되고 있다. 주택경기도 최근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지금은 돈을 더 풀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아니다. 급한 것은 기업들의 발을 묶고 있는 규제를 하루빨리 푸는 일이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투자가 몰려든다. 투자가 늘면 고용과 소득이 늘고 가계는 돈을 쓴다.

/정두환 국제부장 d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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