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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겪은 일이다. 마당에 나무 울타리의 못이 삐져나와 뒤틀린 것이 보였다. 근처에 돌멩이가 있어 못을 박으려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한참을 낑낑거리다가 근처 철물점에 가서 망치를 사왔다. 그 망치로 못을 박고 나무를 고정시켰다. 잠시 쉬고 있는데 망치가 앞서 못과 씨름했던 돌멩이에게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인간들은 허약해. 내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거든." 어처구니없다. 망치는 정말 혼자서 못을 박았다고 믿은 것일까. 기자의 팔이 망치를 휘두른 것이 아니고 말이다.
컴퓨터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의 바둑이 끝났다. 정말 사람들은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고 믿을까. 알파고를 사람들은 고상하게 '인공지능(AI)'이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란 국어사전에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추리·적응·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이라고 쓰여 있다. 지능은 '지적활동의 능력'을 말하다.
이번 대결은 그냥 보면 인간과 또 다른 존재와의 대결처럼 보인다. 하지만 컴퓨터는 컴퓨터일 뿐이다. 컴퓨터가 인간을 넘어섰다는 일부의 해석은 잘못됐다. 바둑의 경우의 수가 250의 150승이라고 하는데 이는 현대 컴퓨터의 발전 속도로 봐서 조만간 달성할 수 있는 숫자다. 보다 경우의 수가 적은 체스를 컴퓨터가 훨씬 이전에 계산할 수 있었듯이 바둑이라는 조금 복잡한 경기도 조작이 가능하다. 이세돌이 확실히 지는 날도 곧 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 즉 기계가 기계가 아닌 것은 아니다. 기자가 사용하는 PC 윈도10과 알파고의 차이는 울타리를 고치는 데 쓰인 돌멩이와 망치의 차이보다 절대로 크지 않다. 사람의 근육이 아닌, 망치가 스스로 못을 박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터무니없듯이 알파고가 인간을 이겼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달리기는 인간보다 자동차가 빠르지만 그 자동차가 인간을 이겼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계 때문에 인간이 곤욕을 치른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19세기 산업혁명 기간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기계파괴(러다이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컴퓨터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혹자는 단순기계와 복잡기계(인공지능)를 구별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논리가 약하다.
세상은 생물과 무(無)생물로 나뉜다. 그리고 인간과 비(非)인간으로 구분된다.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알파고가 인간을 넘어섰다고 하는 데는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다. 알파고를 만든 미국 기업 구글 띄우기에 다름 아니다. 단순한 컴퓨터 바둑게임을 대단한 사건인 것처럼 확대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과학기술이 질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개발에 한층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기계는 기계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기계가 아니다. 인재가 육성되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되는 그런 사회를 두려워해야 한다. chs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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