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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물가상승률이 연 10조 배에 달하면서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수레 한가득 마르크화를 싣고 다니는 모습이 흔한 풍경이 됐다. 전쟁배상금과 국제 환투기 세력의 독일 마르크화 집중공격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독일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햘마르 샤흐트가 1923년 11월 중앙은행 총재에 오르면서 환투기 세력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렌텐마르크'라는 새 화폐를 발행하고 대출을 금지했으며 민영은행의 긴급화폐 발행권도 박탈했다. 마르크화를 빌리기 어렵게 하기 위해 단기대출금리를 30%에서 45%로, 당좌대월금리는 40%에서 80%로 올렸다. 효과는 컸다. 마르크화 공매도 전략을 쓰던 환투기 세력들은 이제 보유 외화를 팔아 마르크화를 갚아야 했고 이로 인해 독일의 외화 보유액은 증가하고 마르크화도 안정됐다. 환투기 세력들은 결국 대규모 손실을 입은 채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992년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가 영국 파운드화를 굴복시키면서 무려 10억달러를 챙긴 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헤지펀드들로서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동남아와 한국 등을 노리갯감으로 삼아 재미를 보면서 황금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독일의 예에서 보듯 이들이 항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때 헤지펀드들은 홍콩 달러를 다음 타깃으로 삼았으나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동원한 중국 정부의 반격에 수십억달러의 손해만 입고 후퇴해야 했다. 지난해에는 스위스 프랑화 가치 하락에 베팅했던 에베레스트캐피털이 스위스중앙은행의 페그제 폐지 선언으로 아예 해당 펀드의 문을 닫는 굴욕을 겪었다.
헤지펀드가 이번에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홍콩에서 위안화 약세에 베팅하며 중국 당국과 환율 전쟁을 벌였던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는 외신 보도다. 손해액이 당장 5억6,200만달러를 넘어섰고 앞으로 3개월 내에 8억700만달러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헤지펀드들로서도 중국 노이로제에 걸릴 만하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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