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욕망의 화신이 아닌 오히려 부패한 권력을 비판할 것 같은 캐릭터. 대중이 배우 정진영(52·사진)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멜로는 그에게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동안은 주로 극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거나 시사프로그램 사회를 맡는 등 진지하긴 하지만 대중과의 친숙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MBC 월화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 부패한 권력자이자 전 총리 강석현 역을 맡아 진한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할배 파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대중과 친밀함을 형성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정진영을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할배 파탈이라는 별명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아주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말이 있나 싶었는데 저를 좋아 해주시는 분들께서 그런 별명도 붙여주시고, 감사해요.” 치명적 매력을 지닌 할아버지라는 의미의 할배 파탈이라는 별명을 아느냐고 묻자 활짝 웃어 보이며 그가 보인 반응이다. 인기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신기해하는 모습에서 연기 확장과 변신에 성공한 배우의 만족감과 즐거움이 느껴졌다.
극 중 강석현은 비자금을 조성해 그 돈으로 자신의 자식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욕망을 품은 정치인으로 삶의 순간마다 정의와 거리가 먼 판단으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 냉혹하던 강석현은 첫사랑 백청미와 닮은 은수(최강희)를 사랑하게 되면서 삶을 반성하게 된다. 통속적인 듯 하지만 국내 드라마에서 젊은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 노인이 성찰하는 이야기는 드물다. “나이가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은수와의 멜로가 부담스러웠어요. 둘이 나중에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시청자가 이걸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정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표현하지 못해 못 받아들이시고 욕만 먹는 건 아닌지 걱정 많이 했어요.” 정진영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했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상대 배우 최강희의 덕이었다고 한다. “최강희라는 배우가 굉장히 맑은 배우예요. 멜로는 눈을 마주치고 하는 연기인데 최강희 씨의 눈은 은수를 느끼기에 너무 좋은 눈이었어요. 촬영 기간 내내 은수로 느껴져서 연기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화려한 유혹은 멜로 라인도 화제였지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와 스토리텔링도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배우로서 선과 악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보통 연기 내공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감정이 짙은 인물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까다로운 인물 연기하기 어려운데 저는 그런 어려운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번에도 재미있게 연기했어요. 선과 악이 단순하게 나뉘어 선이 승리하는 구조가 그동안 국내 드라마의 공식이었는데 화려한 유혹은 그렇지 않아서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겠지만 다행히 시청자들이 저희 작품을 많이 아껴주셨어요.”
정진영은 결국 은수를 통해서 자신을 반성하는 강석현을 보면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가운데 악보다 선을 좀더 발현 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지배하는 힘인 사랑에 대해 “알고도 먹는 미약, 마약은 심했고, 알고도 홀리는 그런 것”이라고 정의내렸다. 강석현 역을 연기하며 한층 부드러워지고 ‘달달해진’ 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연승기자 yeonvic@sed.co.kr사진제공=FNC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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