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게임세계에 뛰어들 때부터, 프로게이머 은퇴 후 방송세계로 재도전할 때에도 항상 모두가 안될 거라고 그를 말렸습니다. 그때마다 다수의 편견을 깨는 것은 ‘스스로의 긍정적인 마음’이라며 묵묵히 극복해온 한 남자가 있습니다. 명실공히 톱 클래스 프로게이머이면서도 국제e스포츠대회(WCG)에서 세계 최정상 스타 임요환에 가려 만년 2등에 머물렀던 홍진호씨
게임을 할 땐 비상한 두뇌를 가진 천재지만, 일상에선 빈틈 많은 개구쟁이라고 합니다. 서울경제썸에서 전 프로게이머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씨를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전(前) 프로게이머, 현재는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홍진호입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 게임을 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 “게임은 놀 때 하는 거지, 일이 아니다”는 말을 들었어요. 처음엔 약간 의기소침했었는데 제 주변 지인들도 계속 제가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더라구요. 그 순간 전 오히려 ‘게임이 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분야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란 듯이 꼭 게임으로 성공해야겠다는 오기도 생겼죠. 그때부터 게임에 빠지게 된 것 같아요.
게임할 땐 좀 무뚝뚝하고 조용해 보이지만 평소엔 어리바리하고 좀 장난기많은 성격이예요. 19살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혼자 상경해서 살다 보니 힘들어도 참고 항상 긍정적으로 하려는 습관이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게임할 때도 감정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침착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실제로 경기 중 위기나 역전당하는 상황이 닥쳐도 감정동요가 덜 되는 편이죠. 근데 일상 생활 할 땐 저보고 빈틈 많은 성격이라고 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때 힘든 순간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직업 특성상 경기 그리고 승패의 미션이 주어지니까요. 순간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바뀌니까 경기가 끝나고 집에 오면 스트레스가 쌓였죠.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땐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인공지능)의 바둑 경기를 한순간도 안 놓치고 봤어요. 게이머 입장에서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라도 최고의 인간 두뇌를 이길까?’하는 호기심이 많았거든요. 결과적으로 바둑에선 인간이 졌지만 다음 종목에선 꼭 인간이 이길거라 확신해요. 인공지능 기술은 결국 인간이 만든거니까요.
꼭 한번 승부를 겨뤄보고 싶어요. 그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니까요. 누구나 승부욕이 있으니까 한번 쯤 겨뤄보고 싶은 상대이지 않을까요? 종목이 스타크래프트라면 제가 프로게이머 대표로 나가서 전성기 시절 리그 결승에 임하는 마음으로 열의를 다해 겨뤄 보고 싶어요.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게임의 특성상 전략보단 순간 상황판단력이 중요한 게임이에요. 오랜 기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했기 때문에 전체 판을 머릿 속에 짜면서 순간을 대처하는 능력이 좀 더 훈련되어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경기할 때 위기의 순간이 와도 감정의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부분이 저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2013년 4월 tvN ‘더 지니어스’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방송의 첫발을 내디뎠어요. 제 인생 첫 예능프로그램 출연이자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방송이니까 더 애착이 가죠. 하지만 매 회 마다 새로운 게임을 하며 승패를 가르는 서바이벌 형식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특히 개그맨인 장동민씨가 워낙 머리가 좋고 게임을 잘하니까 게이머로서 압박이 됐죠. 그래도 더지니어스 시즌4가 나온다면 출연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2라는 숫자만 봐도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2인자라는 뜻이니까요. 1등을 할 수 없는 2등의 한계로만 비춰질까봐 걱정도 많았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2라는 숫자가 저를 표현할 수 있는 마스코트니까 저에겐 너무 고마운 숫자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 숫자’가 되었죠. 이제는 항상 부적처럼 숫자 2가 들어간 물건들을 지니고 다녀요(웃음)
예전엔 아프리카TV의 BJ(방송자키)들이 개인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 편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엔 1인 미디어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1인 콘텐츠가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잖아요. 또 기존 방송 매체에 비해 자유롭고 톡톡 튀는 매력을 갖고 있으니까 좋은 콘텐츠 같아요. 그래서 오늘 집에 가서 당장 할 수도 있어요(웃음)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승부욕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자주 생기는 편이에요. 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단, 간혹 사소한 내기에서 지더라도 제가 이길 수 있을 만한 게임이라면 재도전 해서 승리를 따내요.(웃음)
프로게이머 활동할 때 대회를 나가면 생중계 방송이니까 현장에 카메라가 정말 많아요. 근데 저는 신기하게도 어릴 때부터 카메라 의식을 안 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게임 혹은 방송할 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장난치고 위트 있게 받아치죠. 그런 제 모습이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예능 방송 등에 더 자주 출연하게 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스타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죠.
상황만 된다면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임요환 선수를 보니까 저도 빨리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싶더라구요.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제 짝을 기다리고 있어요. 게임을 좋아하는 여성 분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우선 저랑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저는 평소 여러가지 게임을 두루 해보는 편인데, 그때마다 저만의 게임을 개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로 캐릭터를 창작하는 부분과 게임 밸런싱(캐릭터마다 강,약점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게임의 공정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개발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준비 중이구요.
요즘엔 20대 청춘의 열정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보는 것이 목표예요. 특히 방송 일을 하면서 그동안 제가 겪어보지 못했던 여러가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 연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제 발음 때문에 안되겠죠?(웃음)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앉아서 게임만 하던 게 습관이 되어서 활동적인 것을 싫어했어요. 특별히 잘하는 운동도 없고 흥미있어 하는 활동도 없었죠. 하지만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될 것 같아서 조금씩 하고 있어요.
저는 평소 계획을 잘 안 세우는 편이에요. 프로게이머 생활할 땐 꼬박꼬박 계획을 세웠는데 생각대로 안되면 제 스스로 좌절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하자고 마음먹으니까 일이 더 잘 풀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도 늘 긍정적인 마인드로 제 인생에 올인하려구요.
/정가람기자 garam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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