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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차곡차곡… 레고, 혁신을 쌓아올리다

마구잡이식 도전은 눈앞의 성과만 부풀릴 뿐

■레고 :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데이비드 로버트·빌 브린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90년대 컴퓨터 게임 등장으로 위기

가족경영 버리고 외부 경영자 수혈

초심으로 돌아가 ‘조립 경험’ 의미 재정비

조직이 직면하는 혁신 딜레마 파헤쳐


여덟 개의 돌기와 세 개의 빈 원통이 달린 원색의 직사각형 블록. 언뜻 봐선 아무런 매력도 없는 플라스틱 블록은 서로 맞붙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연다. 단 여섯 개의 블록을 조합해 만들어낼 수 있는 형태만 해도 9억 1,500만 개에 달할 정도다. 지난 5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으며 그 자체가 창의성을 의미하는 도구가 된 장난감, 레고 블록의 이야기다.



지금도 매년 세계 인구의 3배에 달하는 물량의 쏟아내며 세 살 어린아이부터 구글의 창업자까지 가지고 노는 이 세기의 장난감에는 얽힌 스토리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어두고 레고의 혁신 스토리에 집중한다. 쓰러질 위기에 처했다가 부활한 레고 그룹의 여정을 따라가며 어떤 혁신이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혁신의 속도와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펼친다.

1932년 덴마크의 시골 마을 빌룬에서 나무 장난감을 만들던 작은 가족회사는 1950년대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누구보다 빨리 도입하는 등 도전 끝에 1958년 레고 블록을 개발한다. 레고 블록은 장난감이라는 제품 대신 조립 놀이라는 경험을 제공했고 회사는 세계 일류 완구기업으로 우뚝 선다. 하지만 매출이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레고는 위기를 맞는다.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등이 도입되며 아이들은 더 새롭고 재미난 놀이에 빠져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레고 블록의 특허가 만료되며 저가 경쟁자가 다수 출현한 것도 원인이었다.

회사는 빠른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혁신’을 기획했다. 3대째 이어지던 가족 경영 대신 외부 경영자를 수장으로 앉혔다. 그는 매출을 키우기 위해 ‘자녀가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 최강의 브랜드’라는 정확한 목표를 세웠고, 복음처럼 여겨지던 경영 전략들을 바탕으로 혁신의 청사진을 그렸다. 예컨대 레고는 조립이 서툴러진 요즘 아이들을 위해 키트를 단순하게 만들기로 했고, 혁신의 전 영역을 탐험하라는 조언을 수용해 디즈니랜드를 본딴 ‘레고랜드’를 세웠다. 그러나 혁신은 실패로 돌아갔다. 수많은 도전은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한 채 비용만 늘렸고, 레고는 매출은 성장하지만 적자도 쌓이는 악순환에 빠진다. 급기야 2004년 폐업 직전까지 몰린다.

레고의 실패를 “혁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기업이 마구잡이 혁신을 시도할 때 벌어지는 최악의 결과”라고 분석한 저자는 레고의 부활을 지켜보며 혁신의 규칙을 재정립한다. 레고의 새 경영자는 과거 레고를 성공케 한 핵심 가치, 즉 조립 경험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에서 해법을 찾았다. 더불어 실험은 환영하지만 그 이면에는 통합성을 유지하는 경영 시스템이 필수라는 사실 또한 깨닫고 통제력을 갖춘 단단한 조직으로 돌아오는 데 힘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그 발걸음은 반드시 신중해야 했다. 인기 혁신을 따르기보다 해당 기업에 어떤 혁신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고 방향성을 확인한 후 차곡차곡(brick by brick)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자는 레고의 이야기를 통해 모든 조직이 지속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영감을 주고자 했다고 서문을 통해 밝힌다. 다만 몇 가지 법칙으로 혁신의 청사진을 간추린 후 그것을 따르도록 재촉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단언한다. 레고 그룹의 시스템을 접목한다고 해서 누구나 비슷한 성과를 낼 수는 없으며 그것은 레고의 실패를 반복하는 일일 뿐이라는 의미다. 실제 책에는 몇 가지 문장으로 요약하기 힘든 수많은 경영적 통찰과 성공·실패 사례가 가득하다. 여러 레고 제품의 탄생 스토리나 84세 장수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1만6,800원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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