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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햄릿, 오셀로, 맥베스…
남들은 한 편 쓰기도 힘든 세기의 명작을 이렇게나 많이 남겼으니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장사에 뛰어든 자가 이런 명작을 쓸 역량이 있었을까. 역사 속에 이런 의문이 하나둘 쌓이며 이 위대한 작가에 대한 의혹은 점점 커졌다. 바로 셰익스피어는 가공 인물이고 실제 작가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대문호이자 정치·철학자였던 프랜시스 베이컨,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 제17대 옥스퍼드 백작인 에드워드 드비어 경이 '진짜 셰익스피어'로 거론된 인물들이다.
책은 바로 이 셰익스피어의 비(非) 원작자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200여 년의 논쟁을 정리한다. 비 원작자설이 처음 불거진 것은 1785년이다. 제임스 윌모트라는 학자가 셰익스피어가 원작자라는 증거를 하나라도 찾기 위해 현지 조사에 나섰지만, 소득이 없었다. 결국, 그는 원저자가 따로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지목했다. 1794년 윌리엄 헨리의 '위조 사건'은 셰익스피어 원작자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수집가였던 새뮤얼 아일랜드는 아들 윌리엄 헨리와 셰익스피어 관련 서류 수집에 몰두했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윌리엄 헨리는 낙담한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 위조 서류를 만들고 흥분한 새뮤얼은 이를 책으로까지 출간했다. 훗날 이 모든 게 위조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또 한 번 화제를 모은다.
윌리엄 헨리 외에도 미국의 델리아 베이컨,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셰익스피어 비 원작자설을 제기한 인물과 그들이 주장, 경과를 추리소설처럼 긴장감 넘치게 정리했다. 저자는 그러나 단순히 역사 속의 논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원작자'임을 확고히 주장한다.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는 독자들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예컨대 줄리엣은 결혼할 때 13살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의 평균 결혼연령은 25세였다. 책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희곡은 자기 표출을 위한 수단이었던 경우가 드물었다"며 "오늘날의 가치관에 작품을 끼워 맞추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1만9,8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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