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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과 북한산이 만나는 자락에 위치한 서울 평창동. 마을 초입에서 평창 11길을 따라 3분여를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단아한 회백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에 밀착해 수평으로 펼쳐진 콘크리트 외벽을 지나면 중앙의 주차장 입구가 나타난다. 주차장 안쪽을 들여다보면 햇살이 쏟아져 내려와 눈이 부시다. 안으로 들어가면 머리 위로 하늘이 뻥 뚫려 있고 정면에는 커다란 바위 언덕이 경사지를 따라 형성돼 있다. 건물이 바위 언덕을 중정(中庭) 형태로 품고 U자로 들어선 형태다. 평창동의 산자락을 고스란히 품은 집. 바로 미메시스 아트하우스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오피스, 지상 2~3층은 주택인 건물이다.
자연을 마당에 품다
수천년 된 바위언덕이 건물 마당
계절변화따라 다채로운 자태 뽐내
이곳에 수천년 동안 있었을 바위 언덕은 그대로 건물의 마당이 됐다. 건축주가 자연을 보존한 채 건물 짓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을 설계한 김준성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원래는 지상부까지 언덕이 있었는데 파고 내려가다 보니 현재의 바닥 부근에서 산자락이 끝났다"며 "흩어져 있던 바위를 재배치한 것을 제외하면 그대로 형태를 보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건축물은 바위 부분을 포함한 총 대지면적 1,098㎡의 30% 수준인 325㎡에만 들어섰다. 그리고 바위 언덕은 모두의 공간이 됐다. 건물이 이 바위를 U자형으로 둘러싼 덕에 사무실과 주거시설 어디서든 바위 마당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
거주자들은 자연을 거스르거나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 혜택을 톡톡히 받는 모양이다. 바위 언덕에 자리한 수풀들은 계절에 따라 다른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외에도 건축시 다소 힘들게 보존해낸 건물 오른쪽 모서리의 커다란 벚나무도 봄마다 연분홍 꽃들을 흐드러지게 피워내며 보답한다. 가끔은 건물 오른편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까지 이 집 마당으로 들어와 오르락내리락한다.
풍성한 주거경험 선사
천정없는 복도마다 하늘이 한눈에
정겨운 옛 골목길 걷고 있는 느낌
김 교수에게 대단히 살아보고 싶은 집이라고 얘기하자 실제로 주거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궁리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건물은 저층부는 사무실, 상층부는 다세대주택으로 구성된다. 주택은 총 8가구로 원룸부터 스리룸까지 다양하며 모두 임대로 거주한다. 김 교수는 설계 당시 이들 집으로 가는 경로를 다양하게 구성했다. 또 복도를 이동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넓혔고 복도 군데군데의 천장을 없애 하늘을 받아들였다. 이 덕분에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복도 자체의 공간감은 물론 바위 마당 쪽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 마치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건물 중간중간의 데크와 옥상 마당을 마련해 사람들이 한숨 돌리고 쉬어갈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김 교수는 "건물 외관까지도 유닛 단위로 여러 개로 나누어 여럿이 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게 했다"며 "왜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공간이 사방으로 열려 있음에도 거주자는 안전하게 느낀다고 말한다"고 웃으며 전했다.
좋은 건축주와 함께 빚어낸 작품
공공성 위해 공간도 재료도 아낌없이
전문가도 놀란 건축주의 철학 엿보여
재미있는 점은 건축가들이 이 건물을 방문하면 대뜸 건축주가 누군지 묻는다는 것. 그만큼 공간이나 재료를 아낌없이 쓴 덕에 건물의 특색이 생겨나고 완성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복도의 경우 필요한 면적보다 5%만 더 사용하겠다고 미리 말했는데 흔쾌히 허락했다"며 "실제로는 좀 더 면적을 들였는데도 건축주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건물의 건축주는 바로 자신만의 건축 심미안과 철학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건축물은 용도와 상관없이 공공성을 띤다고 생각하며 이 건물 역시 오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과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싶어했다는 전언이다. 김 교수에게는 좋은 건축주를 만나는 것 외에 다른 행운도 따랐다. 바로 이전 건물에서 사무실을 빼야 할 때 마침 이 건물이 비었던 것. 그래서 곧바로 바로 이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자신의 설계작에서 또 다른 설계를 해나가는 경험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사무실에 앉아 바위 마당 쪽 풍경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사무실을 떠나기 싫을 정도"라며 웃었다.
파주 아트뮤지엄… 엑시옴 음성공장… '소통의 건축' 시리즈 '미메시스'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건물은 국내에 '미메시스 하트하우스' 외에 하나 더 있다. 바로 파주의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이는 김준성(사진)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가 스승이자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알바로 시자'와 함께 설계한 작품이다. 김 교수는 자신이 단독으로 설계한 아트하우스에 아트뮤지엄의 느낌을 많이 반영하고자 했다. 아트하우스에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하고 곡선미를 살린 것은 그 때문이다.김 교수는 스승의 영향하에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흡수되지도 않는 조화로운 건축을 추구해왔다. 이후에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건축 코디네이터로 7년여간 일하면서 소통을 통해 새로움을 찾아내는 데 익숙해졌다. 특히 건축주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서울 평창동 산자락을 그대로 건축물로 끌어들인 '미메시스 아트하우스'는 이러한 철학과 태도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김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있다. 오는 6월 준공되는 탁구 관련용품 제작업체 엑시옴의 충북 음성공장은 그의 또 다른 발걸음이다. 건축주는 현상공모에 내기 위해 만들어놓았던 한 설계안을 보고 "내 운명과도 같은 설계안"이라며 "꼭 그대로 지어달라"고 했다고. 김 교수는 "내부에 정원이 3개 있는 등 여유로운 공간,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설계했다"며 "이제까지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공간형식을 도입한 공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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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권형기자 buzz@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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