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십시일반 제작자금을 마련한데다 일본군 위안부 실화를 다뤄 큰 관심 속에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귀향’이 정작 크라우드펀딩 후원자들과의 약속은 뒷전으로 미뤘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에 따르면 ‘귀향’은 21일 누적 관객 수 344만1,330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특히 7만5,270명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총 제작비 25억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1억6,122만원을 마련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귀향’ 제작진이 제작비 모금 당시 후원자와 약속했던 시사회 티켓이나 관람권 지급 등을 지키지 않으면서 후원자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1만원 이상 후원한 3만4,136명 가운데 티켓을 배부 받은 사람은 17일 기준 1만2,922명으로 전체의 3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4일 후원자를 대상으로 한 티켓 배부 규모가 3,000여장 선에 불과했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1만장 정도 추가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후원자 A씨는 “후원자 사이에 ‘귀향’의 흥행 과정에서 정작 우리만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이달 초 제작사 측에 개선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등 직접적인 컴플레인(불만 표명)이 있었다”며 “이후 제작사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보자인 B씨는 “귀향이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는 데서 더 나아가 7만5,000여명이 후원에 나섰다고 홍보를 하고서는 정작 후원자와의 약속은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작사인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임성철 PD는 “펀딩에 참여한 네티즌들에게 예매권 배부 양식을 포함한 메일을 일괄적으로 발송했지만 별도의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 일 처리가 미흡한 측면은 있었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후원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티켓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또 임 PD는 ‘면피용’으로 티켓 배부를 급하게 늘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가난한 제작사라 확보하고 있는 자금이 없다”며 “지금도 후원자분들께 티켓을 제공하려 돈을 계속 빌리고 있고 빌린 돈은 모두 티켓을 사는데 쓰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후원자는 시사회 참석을 원했지만 좌석이 없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제작사측은 (후원자 전체를 초청할 만큼의) 좌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시사회에 초대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인터넷 카페나 영화 관련 블로그 등을 통해서는 수천 장의 초대권이 배포됐다. 이에 대해 후원자들 사이에서는 “후원자에게 제공할 티켓은 없고 (마케팅에 유용한) 블로거에게 줄 표는 있느냐”며 제작사가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B씨는 “후원자에게 이렇듯 불성실한 태도를 취하면서 국민의 정성과 도움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국민을 기만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에 제이오엔터테인먼트는 시사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임 PD는 수 천장의 시사회 초대권이 배포된 것은 배급사가 정해지고 난 후의 일이라며 “배급사의 결정이 후원자분들께 상처를 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크라우드펀딩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구조적 문제를 낳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증권형과 달리 법적인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아 모금 주최측의 자율적 약속 이행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 업계 전문가인 고용기 오픈트레이드 대표는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후원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중개업자가 참여자들과의 약관을 설정하는 등 약속이 이행되도록 강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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