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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막을 내렸다. 대국 기간 동안 가는 곳마다 이 얘기가 나오지 않은 자리가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덧 대화가 "내 일자리는 안전할까"로 모아 졌다는 점이다. 필자와 같은 컨설턴트를 포함한 숙련된 고부가 가치 영역, 글쓰기와 같이 창의적인 정신노동에 이르기까지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기계와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 일자리를 빼앗는 재앙이 될까. 독일이 시작한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미리 답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정부는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한 자동생산체계를 구축해 제4 산업혁명, 즉 인더스트리 4.0시대로 도약해야 한다고 보고 이를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왔다. 이에 대해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당연히 존재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구조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독일 내에서 35만여개의 일자리가 순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봇공학과 전산화 확대로 조립 및 생산 분야 일자리 수가 60여만개 줄어들겠지만 정보기술(IT) 및 데이터 과학 분야에서 약 1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일자리가 결국 순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연방 교육연구부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단순하고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직무에서 일자리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유연한 대응, 문제 해결, 맞춤화 등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늘어날 것으로 독일 측은 보고 있다. 즉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다고 보기보다는 물리적·디지털 지원 시스템을 통해 생산력이 향상된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는 얘기다.
다만 대비는 필요하다. 근로자는 자동화·기계화 흐름에 대비해 효과적 업무 수행을 위한 스킬을 미리 갖춰야 한다. 로봇과 함께 작업하게 될 경우 갖춰야 할 물리적 역량부터 고급 프로그래밍·분석에 이르는 IT 소프트웨어 경쟁력까지 두루 확보해야 한다. 기존에 없던 직업이 생겨날 수도 있다. '로봇 코디네이터'가 대표적이다. 작업장의 로봇을 감독하고 오작동이나 오류 신호에 대응하는 직업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처럼 고용 구도 변화에 대비해 기업은 노동인구의 재교육 시스템과 전략적 인력 수급 계획 등을 어서 고민해야 한다. 또 정부는 자동화·기계화를 통해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 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번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 활용과 기계의 심화학습 발전 수준을 확인한 단적인 예다. 단순히 누가 이기느냐보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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