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해야 하는 것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집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세금은 억만장자들이 더 내야 한다” “부자가 2~3%의 세금을 더 낸다고 가난해지는 일은 절대 없다. 우리가 더 낸 세금으로 국가부채가 줄어든다면 모두가 더 부자가 될 수 있다.”
2011년 8월31일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 독일의 내로라하는 억만장자 4명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 축구단 구단주부터 가수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외친 것은 단 하나 ‘나에게 세금을 더 부과해달라’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기침체와 국가채무 증가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자 고통에 빠진 국민들 대신 자신들이 총대를 메겠다는 선언이었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1889년에 출간한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부자로서 죽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에게 있어 ‘부’란 신이 잠시 맡겨 놓은 관리자산일 뿐이었다. 비록 ‘약탈적 자본가’ 또는 ‘귀족 강도’라는 꼬리표를 평생 달고 살았지만 “상속세는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세금”이라는 그의 주장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물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최고세율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경영의 모험’ 저자 존 브룩스의 개탄과 “세금을 더 내기는 싫다”는 빌 게이츠의 반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워런 버핏과 같이 일부 억만장자들이 “나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하는 것을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명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 뉴욕주에서 억만장자들의 자발적 증세 요구가 또 나왔다. 록펠러와 디즈니 가문의 후손을 포함한 미국 뉴욕주 갑부들 51명이 최근 주 정부에 자신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라며 청원서를 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우리를 돌아보면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이 셀프 증세를 요구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땅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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