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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괴물’ 트럼프는 누가 만들었나





지난해 여름 미국 텍사스 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뒤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를 풀어놓거나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등의 괴담이 급속도로 유포됐다. 당시 미 특수전 사령부는 중서부 7개 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었는데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저소득층 백인들의 증오가 결합해 만들어진 음모론이었다. 이 와중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 등 공화당 정치인들은 “시민 불안은 연방정부 때문”, “군사훈련인지 감시해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공포감을 부채질했다.

또 극우단체들은 1992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178개국 정상이 합의한 기후변화 행동강령 ‘아젠다 21’이 사유재산권과 미국 주권을 침해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이밖에 ‘공립학교에서 특정종교 교육 금지는 어린이들을 공산주의 사상으로 물들이려는 의도’, ‘총기규제는 오바마 독재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 ‘오바마케어는 치료를 받을 환자와 죽도록 내버려둘 환자를 선별하기 위한 것’ 등도 강경 보수 음모론자들의 단골 메뉴다.

문제는 이처럼 황당한 음모론을 제도권 정당인 공화당이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최선봉은 크루즈 의원이다. 그는 “아젠다 21 때문에 미국은 골프장, 도로를 폐쇄해야 할지 모른다”, “오바마케어는 IS 테러보다 더 위험하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내 극우적 음모론을 늘어놓은 이유는 공화당 대선 주자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히스패닉·무슬림·흑인 등에 대한 트럼프의 비하 발언은 공화당 내 극우의 속내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공화당은 지도부 의지와는 무관하게 당내 극우세력인 티파티 등의 공세에 밀려 유럽의 극우 정당을 점차 닮아가고 있다. 공화당이 ‘아웃사이더’ 트럼프에 의해 납치된 게 아니라 트럼프라는 괴물을 창조했다는 얘기다.



가령 공화당 2위 대선 후보인 크루즈 의원은 티파티의 총아이자 기독교 복음주의자다. 그는 “인권은 민주당이나 공화당, 심지어 티파티도 아닌 창조주로부터 온다”며 법 집행 과정에서 헌법보다 성경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총기규제, 동성결혼, 기후변화협약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 외교 관계에서도 매파인 ‘네오콘’보다 더 대립적이다.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이라 막상 백악관에 갈 경우 실용주의 정책을 펼 것이라는 기대라도 있지만 근본주의자인 크루즈 의원은 미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한때 당내 주류가 밀었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도 월가 등 정치자금 제공자들의 압력에 전향했지만 원래 티파티 출신이다. 반면 온건 보수 성향의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는 후보 경선 3위에 그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정치 성향이 가장 유사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경선에서 중도 하차했다. 이들 공화당 주류는 경제난에 시달리는 고졸ㆍ저소득ㆍ백인 남성 유권자들에게 고소득과 상속재산, 특권을 누리는 ‘골프장 보수주의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화당이 골수 지지층에 휘둘려 중도 보수 색깔을 잃을수록 일반 유권자들의 혐오감은 커지고 백악관 탈환 가능성도 낮아지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탄탄한 당내 조직표에 힘입어 본선 경쟁력이 더 높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을 제치고 대세론을 확정짓고 있다. 하지만 그는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전형적인 ‘리무진 좌파’, 고상한 척 사회적 약자편이라고 떠들지만 온갖 잇속을 차리는 속물로 비쳐진다.

미국 일반 유권자들이 최선이 아닌 차악(次惡)을 뽑아야 하는 처지로 몰렸지만 남의 나라 일도 아니다. 4ㆍ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개혁적 보수주의자인 유승민 의원을 쫓아내며 권위주의 시대로 후퇴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주류들의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가운데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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