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와 비박계가 25일 오후 6곳의 보류지역 중 절반만 무공천으로 남기는 선에서 극적 타협을 이뤘지만 김무성 대표는 ‘옥새 반란’을 계기로 사실상 정치적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총선을 불과 19일 앞둔 시점에서 최악의 파국은 막았지만 ‘분당의 서곡’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나뉜 양 계파는 이념적 지향, 정책 노선과 무관하게 정서적으로는 분당 직전에 와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가운데 차기 권력을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의 대권 경쟁은 잠시 잠복기를 거친 뒤 4·13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불 붙을 전망이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2014년 당 대표에 취임한 이후에도 줄곧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친박계의 위세에 눌려 ‘무기력한 수장’이라는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과감한 결기를 내보였다가도 얼마 못 가 고개를 수그리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이런 이미지는 한층 부풀려졌다.
2014년 10월 ‘상하기 개헌’ 발언 이후 청와대가 반발하자 하루 만에 뜻을 접고, 지난해 9월 여야 대표의 합의 사항이었던 안심번호 공천제가 또 다시 최고 권력의 반대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사례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무성 대표의 입지는 지난 달부터 본격적인 공천 국면이 시작되면서 더욱 좁아졌다. 친박계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칼자루를 쥐면서 김무성 대표는 유승민·이재오 등 비박계 의원이 줄줄이 날아가는 모습을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 반면 대구·경북(TK)과 서울 강남 등 여권 텃밭에선 진박 후보들이 낮은 지지율에도 아랑곳 없이 공천 티켓을 따냈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김무성 대표의 ‘독립선언’이나 마찬가지인 ‘3·24 반란’은 청와대가 주도하는 정국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지 않고서는 대권을 향한 자신의 꿈이 그대로 물거품이 돼버릴 것이라는 절박함에서 나온 결단이라는 분석이다. 정치적 홀로서기의 ‘신호탄’인 동시에 첨예한 차기 대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선제공격’이라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한 측근은 “지난 24일 있었던 기자회견은 한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시나리오”라며 “온갖 모욕을 감수하며 수세에 몰리는 척하다가 후보 등록을 하루 남겨 두고 역공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천 과정에서 폭발하듯 불거져 나온 이번 갈등은 새누리당 탄생의 역사적 과정을 복기해 볼 때 어느 정도는 예견된 사태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부산·경남(PK) 출신으로 ‘상도동계 적자’인 김무성 대표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정치적 아들이다. 야당 정치인으로 반(反) 독재 투쟁에 일생을 바쳤던 YS는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새누리당의 모태나 다름없는 민주정의당과 손을 잡았다. TK와 PK의 연합세력에 뿌리를 둔 보수정당이 닻을 올린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총선 이후에 전개될 권력 다툼은 TK를 기반으로 한 친박계와 PK를 텃밭으로 삼은 비박계가 벌이는 ‘목장의 결투’가 될 것”이라며 “김무성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진단했다.
/나윤석·전경석기자 nagij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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