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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여객기 추락 미스터리







1994년 3월23일 모스크바에서 홍콩으로 향하던 여객기 한 대가 이륙한 지 4시간여 만에 추락했다. 수직으로 떨어진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고 승객과 승무원 75명 모두 사망했다. 당시 여객기는 최신 기종에다 날씨도 양호한 상태. 기장은 900시간 무사고 기록의 베테랑 조종사였으니 사고가 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테러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얼마 뒤 미스터리가 벗겨진다.

어렵사리 블랙박스를 복구해보니 조종석 음성기록장치에서 10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 사고 전말은 이렇다. 16, 13살 남매인 엘다와 야나는 아버지 야로슬라프가 기장인 사고기를 타고 첫 해외여행을 떠난다. 비행 도중 기장은 조종사가 꿈인 아들 엘다를 위해 남매를 조종실로 불렀다. 9·11 테러 이전에는 조종실 통제가 엄격하지 않았던 탓이다. 자동항법장치가 작동 중이라 괜찮을 거라 여긴 기장은 조종간을 아들에게 맡겼다. 이게 비극의 시작이었지 싶다. 한껏 들뜬 엘다가 실수로 자동조종장치를 해제하자 이내 비행기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뒤늦게 잘못을 감지한 야로슬라프가 조종간을 잡았으나 허사였다.



어처구니없는 조종사의 실수로 수십,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충격적인 비행기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사고 당시에는 악천후나 기체결함·테러 등이 지목되지만 ‘조종사’가 원인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상당수다. 1년 전 150명의 사망자를 낸 독일 저먼윙스 여객기 사고도 우울증 조종사의 자살 비행으로 드러난 바 있다. 며칠 전 러시아 남부에서 추락, 탑승자 62명 전원이 사망한 두바이 여객기의 사고 원인이 조종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외신보도다. 블랙박스 해독 결과 의견이 충돌한 기장과 부기장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조종을 시도하면서 비행기 통제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승객의 안전을 생각해야 할 조종사들이 무책임과 일탈에 빠지는 순간을 자주 보게 돼 안타깝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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