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상당기간 지속될 듯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끝나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어딜 가나 알파고 얘기다. 인공지능(AI)에 인간이 패배한 충격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국을 보며 ‘엑스마키나’라는 영화가 연상됐다.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고단수에 휘둘리는 인간 칼렙(돔놀 글리슨)의 모습이 알파고-이세돌과 닮아 보였다. 인공지능을 창조하고 조종하는 주역이 세계 최대 검색엔진 블루북(영화)과 구글(현실)이라는 점도 비슷했다.
#에이바에 대한 튜링테스트 참여
영화는 세계 최고 검색엔진 회사 블루북의 특급 프로그래머 칼렙이 사내 이벤트에서 수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첨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칼렙이 받은 상은 블루북의 회장이자 천재 개발자 네이든(오스카 아이삭)과 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대통령도 만나기 어려운 분인데, 당신 행운아네요.” 칼렙은 동료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다.
칼렙은 헬기를 타고 울창한 숲 속에 위치한 네이든의 비밀 연구소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칼렙은 7일 동안 네이든이 창조한 AI 에이바와 면담을 통해 기계에 입력된 감정과 인격의 수준을 평가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일종의 ‘튜링 테스트’인 셈이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를 만들려는 네이든의 작업을 검증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에이바 “내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마주하게 된 인간 칼렙과 AI 에이바. 에이바는 “새로운 누굴 만난 건 처음이에요”라고 첫 말을 건네고, 칼렙은 에이바의 자태에 매료된다. 며칠 후 에이바가 “내 친구가 되고 싶어요?”라고 묻자 칼렙의 마음은 더욱 심하게 요동친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네이든의 말을 믿지 마요”라는 에이바의 말 한 마디에 칼렙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이제 칼렙은 네이든은 믿지 않고 에이바를 위해서만 행동하게 된다. 인간을 상대로 한 감정·지능 대결에서 AI의 완벽한 승리가 결정지어지는 순간이다. 이로써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를 창조하겠다는 네이든의 야심찬 목표도 성공했다.
#인공지능과 대결, 애초에 어려운 승부
어차피 현실의 이세돌이나 영화 속 칼렙이나 기계를 이기기 어려웠다. 이세돌은 슈퍼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최신 알고리즘 기술로 무장한 인공지능을 대적해야 했고, 칼렙은 세계 최대 검색엔진 블루북의 빅데이터의 총합인 인공지능을 상대해야 했으니 패배는 필연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의 출현은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영화 ‘엑스마키나’의 관점은 일단 ‘재앙’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알파고의 완승이 결정지어진 현실 세계에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측은 당연히 알파고의 승리를 ‘축복’으로 여긴다.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가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대국의 결과를 평가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인공지능이 세상에 가져다줄 놀랄 만큼 많은 이점을 기대해야 한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은 거지…”
반면 알파고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머지않아 인간들이 기계에 모든 일자리를 내주고 밀려나는 어두운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말한 “완전한 AI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식의 ‘AI 재앙론’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그나저나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AI 에이바를 창조했던 영화 속 블루북 회장 네이든이 만취 상태에서 읊조린 말이 예사롭지 않다.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같은 거지…이젠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전에 했던 좋은 일이 널 지켜주리라…”는 중얼거림이. 그렇다면 현실 속 테슬라 모터스의 일런 머스크의 “어쩌면 우리는 AI라는 악마를 불러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흘려듣기 어렵다./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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