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어요. 시골 동네에서 삼삼오오 모여 텔레비전을 보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희로애락을 줄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거든요.”
대중들에게는 ‘희(喜)’의 배우로 이미지가 강한 배우 김수로(46·사진). 그러나 그가 연기를 하든 연극을 무대에 올리든 모든 작품활동의 지향점은 ‘희로애락’이라고 한다. 드라마·영화·연극 등 모든 작품 그리고 연기에서 희로애락 중 하나만 빠져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그맨은 계속 웃겨야 하지만 슬픔이 없으면 시소가 기울어져 있는 느낌을 받아요. 진정한 웃음에도 슬픔이라든가 노여움이라든가 하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어야 진정성 있는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아요.”
영화, 연극,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연극 기획, 프로듀서 등 꾸준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수로에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의 희로애락에 대해 듣고 싶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독한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그에게 희로애락은 일 자체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곁들여 대답을 할 법도 한데 오로지 연기와 작품활동에 초점을 맞춘 대답들이 그가 연기밖에 모른다는 세간의 평가를 확인시켜줬다. “워커홀릭 맞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뭔가를 파생해 창작하려고 해요. 그런데 이게 즐거워요.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을 때 열심히 하는 거예요. 배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쉬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사실 그게 가장 두려워요. 미술관에 가 그림을 보고 음악회에 가 음악을 듣는 것이 힐링도 힐링이지만 저는 영감을 얻으려고 가는 거예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일하는 데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영감이 치고 올라올 때의 기쁨은 로또 맞은 기분이에요. 연기로 영감을 얻는 것도 일상생활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김수로가 사랑받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죠, 늘.”
진지한 역할도 맡았지만 처음 대중에게 다가선 것은 ‘주유소 습격 사건’ 등의 코믹 배우 이미지다. 이후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는 유쾌한 사람으로 더욱 각인됐다. 그러나 평상시 모습은 진지함 자체였다. “유쾌한 것은 되게 좋은 거예요. 본인을 포함해 남들도 유쾌해지는 거니까. 대중이 그렇게 봐주시는 것은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유쾌함도 너무 강하면 좀 그렇죠. 슬플 때도 있고 그런데 이런 것을 평상시에도 잘 조율해야 하는 것 같아요. 유쾌함만 100% 있으면 그 사람 죽을지도 몰라요, 감정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요.”
코믹 배우 이미지 외에도 의리 있고 ‘쿨’하고 멋진 역할은 김수로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도 그랬고 현재 방송 중인 ‘돌아와요 아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쾌한 김수로를 예상하며 만났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그의 모습 때문인지 반전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극 중 인물처럼 쿨한지 궁금했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는 어떤 역할이든 잘 어울릴 것 같거나 딱 이 역할이 어울리는 이미지일 때 캐스팅을 해요. 저는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아요. 이미지를 보고 저를 캐스팅한 건데 연기하면서 불편하지 않았어요(웃음). 연기도 그렇고 그렇게 멋지게 살고 싶죠. 물론 자기반성도 하면서 멋지게요.”
드라마·영화·연극에 모두 출연해도 한 장르에서만 빛이 나고 돋보이는 배우가 있다. 그러나 김수로는 드라마에 출연할 때는 탤런트 같고 영화에 출연할 때는 영화배우 같고 연극 무대에 서면 연극배우 특유의 어조와 몸짓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배우에게는 좋은 이야기네요. 어느 옷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거니까요. 예능을 많이 하다가 영화에 나오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고 드라마만 찍다 보면 또 드라마 연기에 익숙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모든 장르에 어울리는 것 같은 이유는 각 장르를 찍을 때마다 3년 정도 텀을 주고 작품을 선택해요. 드라마는 3~4년마다 찍어요. ‘공부의 신’ 끝나고 ‘신사의 품격’ 찍을 때도 그랬고 ‘신사의 품격’ 끝나고 이번에 하고 있는 ‘돌아와요 아저씨’도 몇 년 후에 한 거예요.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 후 ‘진짜 사나이’ 들어갈 때도 텀은 있었어요. 프로그램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해요, 잘하려면.”
여러 장르에 출연하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계속해 무대에 올리고 있는 ‘연극’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역시 의외였다. “다 좋아하니까 다 하는 것 같아요. 어느 장르를 하는데 안 좋아하면 안 할 것 같아요. 또 인기도 좋지만 드라마는 일 년에 두 개는 하고 싶지 않아요. 막 연기를 찍어내는 인쇄소 같은 느낌은 받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극을 끊임없이 올리고 본인도 출연하는 것 보면 연극에 대한 애착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것이 아닌지 궁금했다. “연극은 끝나고 나면 배우에게 힐링을 줘요. 고민과 고통을 수반하는 대신 관객들의 박수를 라이브에서 받으니까 전에 힘들었던 감정들이 씻은 듯이 사라져요. 영화 180억원짜리 잘 찍어 경제적 효과를 내는 것도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지만 80석짜리 공연에서 80명의 관객을 쥐락펴락하고 감동을 주는 것도 그들에게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니까 보람되죠.”
김수로는 몇 년째 대학로에서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배우로, 제작자로의 작품활동이기도 하지만 배고픈 배우 지망생 후배들이 연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김수로 프로젝트가 10탄까지 오면서 김수로 워크숍을 한 것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예요. 돈을 그렇게 벌지도 않았는데 6,000만~7,000만원 들여가면서 이걸 하는 것은 이 프로젝트로 돈을 벌든 벌지 않든 사회에 기부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 무직자가 돼요. 연기하는 후배들은 10% 정도더라고요. 다들 아르바이트해요. 신인들에게는 사실 돈보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한데 이 기회를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거예요. 다행히 김수로 프로젝트가 잘돼 기존 배우들도 연극을 보러 와요. 출연했던 후배들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해요.”
한편 김수로는 올해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실험·예술성을 지향하는 소극장 공연)에 진출한다. 오는 8월12일부터 한국 창작 뮤지컬 ‘그린 카드’를 오프브로드웨이에 올리게 된 것. 비자 기한이 만료된 한국인 유학생이 미국인 여성과 위장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릴 예정이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올해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게 됐어요. 이제 김수로 프로젝트가 김수로 뉴욕 프로젝트로 발전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동안 보러 와주셨던 분들이 끊임없이 박수를 쳐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대학로가 기반이 된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면 어떨까 상상을 해봐요.”
/(null)=연승기자 yeonvic@sed.co.kr사진=권욱기자
[he is…]
△1970년 경기 △1993년 서울예대 연극과 입학 △2009년 동국대 연극학 학사편입 △2011년 동국대 연극학 학사 졸업
■출연작
연극-택시드리벌, 이기동 체육관, 유럽블로그, 밑바닥에서
영화-톱스타, 점쟁이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마이웨이, MR.아이돌, 울학교 이티, 주유소 습격사건, 국가대표 외 다수
드라마-돌아와요 아저씨, 신사의 품격
예능-댄싱9 시즌2,3, 진짜 사나이, 마이퀸, 승부의 신, 패밀리가 떴다 외 다수
도서-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쉬지도 말고
■수상 내역
△2008년 SBS 방송연예대상 프로듀서 선정 TV스타상 △2010년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2012년 SBS 연기대상 주말연속극 부문 남자 우수연기상 △2013년 MBC 방송연예대상 남자 최우수상 △2014년 MBC 방송연예대상 우정상
■김수로프로젝트
△2011년 1탄 연극 ‘발칙한 로맨스’
△2012년 2탄 뮤지컬 ‘커피프린스 1호점’, 3탄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4탄 연극 ‘이기동 체육관’
△2013년 5탄 음악극 ‘유럽블로그’, 6탄 연극 ‘연애시대’, 7탄 ‘머더발라드’
△2014년 8탄 뮤지컬 ‘아가사’, 9탄 연극 ‘데스트랩’, 10탄 연극 ‘발레선수’
△2015년 11탄 연극 ‘친정엄마’, 12탄 연극 ‘택시드리벌’, 13탄 뮤지컬 ‘고래고래’, 14탄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15탄 음악극 ‘밀당의 탄생’
△2016년 16탄 연극 ‘헤비메탈 걸스’, 17탄 뮤지컬 ‘친정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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