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지배하던 투표의 법칙이 흔들린다. 학연·혈연·지연을 중시하는 ‘괸당 문화’가 ‘야당 피로증’에 무너졌다.
괸당은 본디 친척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여기에서 혈연·학연·지연 등으로 끈끈하게 얽힌 제주도의 고유한 ‘괸당 문화’가 나왔다. ‘괸당’을 모르고선 제주와 제주도 선거를 이해할 수 없다.
제주도는 17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 금배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강창일·김우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재윤 전 더민주 의원이 12년간 제주의 정가를 지배했다. 택시기사 강모(50)씨는 “제주는 새누리당도 더민주당도 아니고 괸당”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특히 강창일 같은 경우는 제주에 강씨가 많아서 유리하다. 나도 강씨 아니냐”며 웃었다.
그럼에도 제주갑에 네 번째 출마한 강창일 후보는 고전 중이다. 양치석 새누리당 후보와 오차범위 내 접전이 벌어졌다. 도내 언론 6사(제민일보·제주新보·제주MBC·제주CBS·JIBS)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창일 후보는 양치석 후보보다 가상대결에서 불과 0.1%포인트 앞선다. 서귀포도 만만찮다. 강지용 새누리당 후보가 위성곤 더민주 후보보다 앞서지만 그 격차는 0.7%포인트에 불과하다.
오메기떡집 사장 이모(52)씨는 ‘야당 피로증’을 이유로 들었다. 이씨는 “야당이 12년 동안 하면서 예산이나 이런 문제에서 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여당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건설업을 하는 60세 홍모씨 역시 “인물은 강창일”이라면서도 “여당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이런 마음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늘어난 유입인구도 변화의 촉매제다. 이번 총선에서 제주도의 선거인수는 49만7,710명(제주갑 19만488명, 제주을 17만1,420명, 서귀포 13만5,802명)이다. 지난 총선보다 5만6,240명 늘었다. 수년 전부터 유입인구가 급증한 결과다. 이들은 정당별 투표 행태를 강하게 보인다. 4년 전 펜션을 차린 이모씨(36)는 “인물을 본다는 게 말이 좋지, 사실 인맥과 연줄로 투표하는 것 아니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주로 30~40대 젊은층이라는 사실은 더민주에 유리한 부분이다. 야당 피로증 속에서도 더민주가 승리를 기대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야당 피로증과 유입인구의 증가가 제주도의 선거 룰을 바꾸며 이번 선거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로 만들고 있다. /전경석기자 kada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