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학생 한 명이 교수 연구실로 찾아왔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필기도 하고 시험도 잘 본 학생이다. 그렇다. 교수들은 수업시간에 필기 잘하는 학생들을 좋아한다. 어쩔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표정이 좀 어둡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교수님, 상담 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이야긴데.”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헷갈리고 있습니다.” “자네가 상담하겠다는 것이 바로 이거란 말인가? 그럴 때는 의사결정 방법이 하나 있다. 둘 중에 너한테 손해가 큰 쪽으로 해라.”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아니 살짝 놀라는 표정이다. “자네 왜 그런 표정인가?” “교수님, 이런 거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 그렇다면 내가 증명해주마! 자네는 친구를 사귈 때 손해라고는 털끝만치도 안 보겠다는 그런 애랑 친구하고 싶은가? 아니면 손해인 줄 알면서도 좋은 뜻에는 흔쾌히 동참하는 그런 애랑 친구할래?”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덕불고·德不孤).” 공자님께서 논어에서 하신 말씀이다. 여러분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사람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알고 있다. 항상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때 멀리 내다보고 하라. 당장 눈앞에 이익이 되는 것만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만다. 세상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큰일일수록 여럿이서 같이 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기버(giver)다. 이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둘째는 테이커(taker)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남에게 해준 것보다 하나라도 더 챙긴다. 인간관계가 온통 투자대상이다. 셋째는 매처(matcher)다. 이 사람들은 남이 나에게 해준 것만큼만 딱 되돌려준다. 결혼식 축의금 계산하는 방식을 보면 정확하게 동일한 금액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5만원에는 5만원, 10만원에는 10만원.” 너덜너덜해진 축의금 장부를 꼭 간직하고 있다.
사회를 상중하 셋으로 구분하면 각각의 사람은 어디에 배치될까. 애덤 그랜트(와튼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가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중간층에 가면 매처와 테이커가 대거 포진돼 있다. 상층부에는 기버가 있다. 놀라운 것은 하층부에 가도 역시 기버가 있다. 이 이야기를 학생들한테 하면 학생들은 미국 통계와 한국 통계는 다를 것이라고들 말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우선 느낌이 그렇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층부에 테이커, 중간층에는 매처, 하층부에는 기버가 있을 거란다. 과학적 조사가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이므로 일단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그랜트 교수의 주장을 심층 분석해보면 두 가지가 궁금해진다. 첫째, 왜 테이커는 상층부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을까. 둘째, 상층부의 기버와 하층부의 기버는 무엇이 다르길래 양극단으로 갈라질까. 첫째, 테이커가 뭔가 가져갔을 때 상대방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 피해자는 테이커의 발목을 잡는다. 둘째, 상층부의 기버는 남을 도울 때 하층부의 기버와 달리 무조건 퍼주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서 남을 돕는다. 즉흥적이지 않다. 물론 남을 크게 돕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계발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자기가 서지 않으면서 남을 도울 수는 없는 법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하면 윈윈한다. 그런데 먼저 기브하고 테이크해야지 테이크 먼저 하려고 하면 아무도 당신과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늘날과 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된 사회에서 한 번 테이커로 낙인 찍히면 사업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심지어 테이커도 테이커와 거래하기는 싫어한다. 한 번 기버로 소문이 나면 비즈니스 기회는 점점 늘어난다. 모두가 기버와 거래하고 싶어 한다. 이때 기버도 기버를 선호하기 때문에 윈윈이 큰 규모로 일어난다. 평판효과를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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