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이 무대에 오른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에서 공연되는, 시간이 흘러도 ‘영원한 동시대성’을 지닌 이 명작이 이번엔 중견 연출가 한태숙의 손을 거쳐 ‘심리의 시각화’에 초점을 맞춘 새 옷을 입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소외를 그린다. 세일즈맨 윌리 로먼이 불황에 서서히 잠식당하며 행복했던 과거로 도피하고, 결국 30년 넘게 헌신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았다. 충격적인 결말과 혁신적인 기법으로 1949년 초연 당시 미국 전역에서 호평받고 연극계 3대 상인 퓰리처·토니·뉴욕 연극비평가상을 휩쓸었다.
지난 6일 제작발표회에서 일부 공개된 ‘세일즈맨의 죽음’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시각화한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다. 극 중 윌리의 집은 나무 뼈대를 이어 붙여 만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간이다. 이 무대는 공연에서 8.4m의 거대한 3개 벽면(양옆과 뒤)에 둘러싸이는데, 이 벽면은 점점 무대 중앙으로 움직이며 윌리의 작고 허름한 집을 압박한다.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는 “콘크리트 벽이 밀고 들어오는 땅 한가운데 고립된 작은 집 하나는 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소외된 윌리의 상태를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도 1970~9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거쳤고, 그 속에서 가치관을 바꾸지 못한 채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수많은 윌리 로먼’이 있다”며 “(원작의 배경인)미국의 느낌보다는 한국적인 정서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집 옆 공중에 내걸린 커다란 살덩어리도 윌리의 심리를 드러낸다. 연습 현장에서는 소품 의상을 내걸었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4m의 길이의 ‘살덩어리’ 혹은 ‘뇌’를 형상화한 샌드백을 사용한다. 윌리에게만 보이는 이 허상은 그가 불안을 느낄 때마다 흔들린다. 윌리가 예정된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그의 끔찍한 마지막 모습은 바닥에 떨어지는 오브제가 대신할 예정이다. 한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는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극대화해 밖으로 표출하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며 “오브제가 윌리의 분열이나 심리를 효과적으로 상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인공 윌리 로먼 역은 손진환이 맡았고, 윌리의 아내 린다는 예수정이 연기한다. 큰아들 비프 역에 이승주, 둘째 아들 해피 역에 박용우가 캐스팅됐다. 4월 14일~5월 8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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