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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워도 사랑·용서해야 가치 있는 인생"

시인 정호승, 경기인재개발원서 '렉처콘서트'

타인과의 관계가 존재의 근원

한때 분노하고 미워한 감정도

세월 지나면 후회하게 될 것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만약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다면 그래도 사랑과 용서를 선택하세요.”

시인은 용서가 고통이라고 단언했다. 미수(美壽)를 맞을 때까지 평생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사람 마음을 찾아가는 사랑을 고통스러워도 중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도 했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정호승(66·사진)은 최근 경기 수원 파장동 소재 경기인재개발원이 마련한 렉처콘서트 ‘시인과의 동행’에서 “나 자신이 용서와 사랑을 선택한다면 인생은 가치를 갖는다. 상대방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인은 지난 1997년 지은 대표 시 ‘풍경 달다’를 소개하며 처마 끝에 달린 풍경(風磬)과 바람이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일깨워주는 사랑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라는 짧은 시는 시련을 딛고 사랑의 결실을 맺으려는 염원을 담고 있다. 시인은 “당시 전남 화순 운주사에서 1,000년의 시간 동안 함께 누워 있는 부부 와불을 보고 돌아와 사랑의 영원성을 떠올리며 단숨에 썼다”고 상기했다.

그는 “관계는 곧 존재의 바탕이라 할 수 있지만 좋은 때보다 좋지 않을 때가 더 많은 속성을 갖고 있다”며 “그래도 지내온 인생에서 미움과 분노보다 사랑을 선택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인생에 대한 분노를 ‘술 한잔’이라는 시에 풀어냈다. 시에서 술을 사랑에 비유해 ‘인생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그는 “하지만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니 한때의 분노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로 등단 44년을 맞은 시인은 ‘수선화에게’ ‘개똥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갈대’ 등의 시와 시선집으로 꾸준히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소월시문학상·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그동안 1,000여편의 시를 발표했음에도 그는 항상 인생의 바닥을 생각한다. 시 ‘바닥에 대하여’도 30대 중반 나락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중략)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중략)’. 그는 “누구나 자신이 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바닥이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며 “바닥에 걸려 죽음을 피할 수 있으니 바닥은 곧 희망이고 인생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상에 올라섰다면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야 살 수 있다”며 “인생의 묘미는 끝을 끝으로 보지 않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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