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이명호(41) 작가가 자신의 작품 일부를 무단으로 도용하고 변형해 사용했다며 유명 패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33)를 상대로 소송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이 작가와 소송을 대리인인 법무법인 정세의 김형진 국제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마리 카트란주가 자신의 ‘Mary’s A to Z‘ 컬렉션 중 알파벳 T에 해당하는 제품 디자인에 이명호의 2013년작 ’나무…#3‘의 이미지 일부를 무단으로 도용 및 변형해 사용했다”면서 “지난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 ’저작권법과 랜험법에 근거한 저작권 침해와 부정 경쟁에 대한 소‘를 제출해 오는 7월께 재판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연방 상표법인 랜험법은 따로 등록하지 않아도 보호되는 ‘상표권’에 관한 법률로 삼성과 애플 간의 스마트폰 디자인 소송도 이에 근거한 분쟁이었다.
뉴욕의 사진전문 요시미로갤러리 전속작가인 이명호는 2011년 미국 게티미술관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국제전에서 참여했으며 프랑스 에르메스재단, 도이치뱅크, 에어프랑스 등 굵직한 기업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04년부터 진행해 온 ‘나무’시리즈는 자연물인 나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설치한 다음 촬영한 것으로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번에 표절 시비에 휘말린 ‘나무…#3’은 2011년 시화호 부근 갈대밭에서 찍은 것으로 2013년 ‘서울 포토 2013’에서 처음 전시한 후 중국·아르헨티나·러시아·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전시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러시아의 푸시킨국립미술관, 영국 가수 앨튼 존 등이 소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명호 작가는 “지난해 4월 미국에 있는 지인이 ‘유명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와 콜라보 작업한 것을 축하한다’고 연락해 오는 바람에 (표절을) 알게됐다”면서 “실물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고 웹상으로 확인했지만 의도적으로 표절을 피해가기 위해 사진을 옆으로 늘리고 나뭇가지를 지운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상품들은 인터넷 쇼핑몰 매치스패션과 마리 카트란주 홈페이지에서 판매됐으나, 현재는 제품 목록에서 삭제된 상태다.
이씨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정세의 김형진 변호사는 “마리 카트란주가 이명호 씨의 작품을 이미 알고 있었는가와 두 작품이 유사한가가 소송의 주된 쟁점이 될 것”이라면서 “이씨 작품이 워낙 많이 전시됐기 때문에 몰랐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유사성 여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겠지만 제 3자가 이미지만 보고도 연상시킬 정도로 표절임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저작권 침해 행위가 주로 발생한 장소가 미국이며, 미국에서는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아도 상표법이 적용된다”라며 “손해배상액으로 2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작품이 상품화 돼 이미지가 남발된다면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소장 가치 및 작품의 희소성을 훼손할 수 있다” 면서 “차용미술의 한계와 표절의 범위에 대한 국내 법적 기반이 약한 것에 경종을 울리고 판례를 남기고자 소송을 결정한 만큼 손해배상 금액보다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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