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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핀테크는 시간 싸움이다

정영현 금융부 차장





봄을 알리는 신호는 여럿이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벚꽃이, 신촌에서는 대학 새내기들이 봄을 알린다. 꽃나무 대신 무채색 고층 빌딩이 빼곡한 명동의 봄은 유커가 알린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다시 부쩍 늘었다. 이들의 방한 목적은 여전히 쇼핑이 1순위다. 백화점·면세점·로드숍 할 것 없이 줄을 지어 쇼핑백을 채운다.

눈에 띄는 것은 계산 전 지갑 대신 휴대폰을 꺼내는 유커가 확연히 늘었다는 점이다. 면세점에서 고급 화장품을 살 때도, 로드숍에서 생산유통일괄(SPA) 의류를 고른 후에도 계산대 앞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심지어 편의점에서 1,000원도 안 되는 바나나 맛 우유 한 병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국내 유통사들이 중국 간편 결제인 알리페이 등과 경쟁적으로 제휴에 나선 데 따른 유커 결제 시장의 달라진 풍경이다. 국내 면세점 한 곳에서만 연간 1,000억원 넘게 결제되는 알리페이는 이제 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려 또 한 번 몸집 불리기에 들어갔다.

반대 경우를 생각해본다. 우리가 중국이나 미국·유럽 등지에서 이들처럼 휴대폰만 들고 쇼핑을 할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어렵다’다. 유럽에서는 카드를, 중국에서는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야 한다. 1년 전은 물론이거니와 10년 전과도 달라진 것이 없다.

해외는 둘째치고 국내에서조차 간편 결제 시장의 발전 속도는 기대 이하다. 수수료 문제로 사용처를 못 늘리는 등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부 간편 결제 업체들은 아예 실물 카드를 내놓는 등 후행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카드 없이 간편하게’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할 지경이다.



간편 결제의 등장으로 시장 내 입지가 줄어든 신용카드 업계도 시대의 흐름을 제때에 못 따라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간편함과 신속함이 최대의 무기로 떠오른 상황에서 소액 무서명 거래라는 현안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현 정부가 핀테크 육성책의 역작으로 밀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총선 결과에 따라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은산분리 규정이 국회에서 완화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들은 연내 출범을 자신하고는 있지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가 이들의 신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에 더해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신사업 영역의 경쟁 촉진 및 활성화를 위해서는 2차 사업자도 1차 사업자와 시간 차를 최소화해 선정돼야 하는데 상황의 지지부진함이 순차적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융산업에서 전통적인 사업 영역의 수익성이 날로 떨어지면서 핀테크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기업과 정부 모두 핀테크를 생존의 돌파구로 여긴다. 하지만 전통적 사업 영역과 달리 한 보 늦으면 두 보 차가 아니라 다섯 보, 열 보 차가 날 수 있는 영역이 핀테크다. 우리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영국 등 유럽의 핀테크는 이미 샌드박스와 같은 무규제 실험에 들어갔을 정도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때 우리가 뒤따라 오고 있다고 착각했던 중국 역시 앞에서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내부에서 싸우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시간은 결코 우리 편이 아니다.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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