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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바이크]<20>혼다 '골드윙 F6C'와 군산여행

4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퇴근하자 마자 헬멧이며 장갑 등 각종 바이크 장비를 거실 한가득 펼쳐놓고 수선을 피운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스쳐가는 마누라의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다음날은 어어 하다 미룬 뒤늦은 겨울(?) 휴가의 첫날. 사실 휴가라고 딱히 할 일도 없다. 고3 수험생 아들을 둔 가장의 비애다. 마누라는 “알아서 일주일 동안 혼자 잘 놀라”며 애 공부나 방해하지 말라는 듯 경고를 보낸다.

‘에라 잘 됐다’ 싶어 올해의 첫 라이딩을 계획했다. 화끈하게 1박2일로 “땅끝까지 다녀오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이내 꼬리를 내린다. “뭐 적당히 휘~ 바람이나 쐬고 올께.” 내일모레면 50인데 객지에서 혼자 처량하게 잠잘 것을 생각하니 서글픔이 밀려왔던 탓이기도 하다.

지도로 이리저리 루트를 고민하다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한 가장 긴 거리를 고른다. 고심 끝에 택한 목적지는 ‘군산’. 아산만방조제를 통해 수도권을 벗어나 아산-예산-홍성-보령-서천을 거치는, 200㎞가 조금 넘는 코스다. 차로 가면 2시간3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 하지만 두 바퀴 짜리 바이크는 서럽다. 아래 표지판 때문이다. 이 표지판 하나 때문에 내비게이션은 예상 소요시간이 5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동차전용도로 표지판. 혹시 오해라도 있을까 오토바이는 ‘절대 안된다’고 강조하는 친절함까지 베푼다.




휴가 첫날인 월요일 아침. 장거리 라이딩의 설렘을 가득 안은 채 장비를 챙겨 들고 현관문에서 배웅하는 마누라를 향해 “잘있어라 나는 간다”를 외치며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주차장 구석에 처박혀 겨우내 나를 기다렸을 내 소유의 바이크에는 눈길 조차 주지 않은채 그 옆에 떡하니 자리 잡은 낯선 놈에게 다가간다. 혼다의 ‘골드윙 F6C’라는 이름을 가진 놈이다. 잠시 사진으로 감상하자면….

혼다의 최상위 모델인 ‘골드윙’을 베이스로 한 크루저 F6C는 1,800㏄ 6기통 엔진 답게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한다.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덩치다. 제원을 들여다 보면, 1,832㏄짜리 수평대향 6기통 엔진(참고로 2,000㏄ 미만의 국산 승용차들은 모두 4기통 엔진이다)을 얹은, 괴물같은 놈이다. 모델명이 바로 ‘수평대향(F)’ ‘6기통(6)’ ‘크루저(C)’라는 의미다. 무게는 340㎏. ‘이거 실수로 쓰러지기로도 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이때문에 시승을 위해 이놈을 삼성동 혼다코리아 본사에서 인수해 집까지 끌고 오면서 꽤나 긴장했었다.

F6C 별칭은 ‘발키리(Valkyrie)’.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主神)인 오딘을 섬기는 처녀 전사들을 뜻한단다. 1996년 첫선을 보인, 라이더들에게는 꽤나 친숙하고 인기가 있었던 고배기량 크루저 시리즈다. 10여년 가까이 단종됐다가 지난 2014년 혼다는 F6C란 새로운 이름을 달고 다시 컴백했다.

좀 더 쉽게 이 괴물 같은 놈을 설명하자면 혼다의 최상위 투어러 모델인 ‘골드윙’을 베이스로 만든 크루저다. 골드윙에서 각종 편의사양을 모두 떼어낸 것이 바로 F6C라고 보면 된다. 솔직히 길거리에서 이따금 골드윙을 볼때마다 너무 화려해서 조금은 부담스러웠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F6C는 전혀 다른 이미지다. 헬스클럽에 갈 때마다 부러워하던, 운동으로 다져져 근육질이면서도 너무 과하지 않은 미끈한 몸매를 가진 남성을 보는 느낌이랄까.

잠시 F6C의 엔진 배기을 시청각 자료로 감상해 보자.

F6C는 할리데이비슨으로 대표되는 아메리칸 바이크와는 확실히 모든 감성이 대척점에 서 있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배기음은 바이크라기 보다는 오히려 부드러운 고급 승용차를 연상케 한다. 하긴 오토바이에 무슨 6기통 엔진을…. 웬만한 중형 승용차와 맞먹는 엔진을 얹어놓았으니 힘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스로틀을 당기면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차체는 앞으로 치고 나간다. 도심에서는 ‘이렇게 무지막지한 엔진을 얹어 놓았나’ 싶을 정도로 과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F6C의 진가는 한적한 교외에서 드러난다. 미어터지는 지하철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전쟁같은 월요일 출근길 대신 해방감을 가득 안고 도심 반대편으로 내달린다. 아산만방조제와 곧바로 연결되는 39번국도에 올라서니 길이 시원하게 뻥~ 뚫린다. 흐드러진 벚꽃은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꽃잎을 흩날린다. “그래 이 맛이야!”



한적하게 뻗은 국도 위에서 스로틀을 당겨본다. 묵직한 차체가 주는 안정감과 부드러운 엔진은 이제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달려준다. 굳이 1단으로 출발할 필요도 없다. 2단은 물론 3·4단으로도 출발해도 될 정도로 힘이 남아돈다. 부드러운 서스펜션과 육중한 차체는 도로의 요철이 전하는 웬만한 충격은 모두 흡수해준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문득 속도계를 들여다 보면 어김없이 도로의 제한속도를 훨씬 넘긴다. 달리고 싶은 욕망을 꾹꾹 억누르는게 만만치 않을 정도다.

보령에서 길을 벗어나 대천해수욕장에 멈춰선다. 제철도 아닌데, 그것도 평일 오전에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령과 서천 사이 한적한 시골 버스정류장 앞에 잠시 F6C를 모델로 세워본다. 긴 겨울을 견뎌내고 대지에 움트는 새싹만큼 봄을 반기는 존재가 또 있을까.


오전 9시 조금 넘어 출발해 두 차례 짧은 휴식을 거쳐 부지런히 달려 군산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2시. 좌우로 시원하게 펼쳐진 금강하구가 무사 도착을 반긴다. 군산 시내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마음뿐. 경암동 철길마을, 신흥동 일본식가옥(일명 히로쓰가옥),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인 ‘초원사진관’, 유일한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옛 군산세관 등을 대충 눈으로 훑고 군산시내에서 맛집으로 꽤나 소문난 중국집에서 해물 짬뽕 한 그릇으로 뒤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한다.(자리가 없어 앳된 여대생과 합석한채 어색하게 짬뽕을 후루룩 먹어대는게 어찌나 어색하던지…).

금강 하구의 평화로운 경치를 뒤로 한채 다시 부지런히 귀경길에 오른다. 간 길을 그대로 되돌아 오는게 좀 밋밋하게 느껴져 복귀 코스는 서천-보령-서산-당진-송악을 거쳐 삽교천방조제-아산방조제로 변경했다. 하지만 의미없는 선택, 이미 해는 지고 어둠이 내려 앉았으니.

군산 여행의 필수 코스로 불리는 경암동 철길마을.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인 초원사진관.


결과적으로 1박2일 대신 당일 코스를 택한 것은 ‘악수(惡手)’였다. 아무리 봄이라지만 밤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밤 10시를 넘겨 도착하고 나니 곧바로 심한 감기가 찾아든다. 결국 꼼짝없이 남은 휴가를 소파에 드러누운 채 TV 리모컨 하나로 위안을 삼아 끙끙대며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지독한 감기보다 더한 병에 걸렸으니, 바로 역마살. 어차피 올 여름 휴가 때도 홀아비로 지내야 할 판이니, 훌쩍 전국 일주에 도전하겠다고 큰소리쳐 본다.

/정두환기자 dhchung@sedaily.com

후기: 이 코너를 열심히 이끌어가고 있는 유주희 기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휴일 근무가 많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한겨울에 무슨 바이크냐’ 등의 핑계를 내세우며 겨우내 시승기를 온전히 유 기자에게 맡겨 버리고 방치했던 탓이다. 소주나 한잔 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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