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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가습기 살인제’ 그 몸서리치는 참혹함에 대하여

가족 위해 샀는데 毒이라니…

이제라도 철저히 진상 밝혀

수만명 피해자 눈물 닦아줘야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그 끔찍하고 생생한 기억은 6년 전인 201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안이 건조해 가습기를 자주 틀었는데, 그 무렵 업체마다 가습기 살균제를 싸게 내놓고 대대적인 홍보를 벌이면서 제품들을 알게 됐다. 당시 아이가 만 3살이어서 가습기는 필수품이었고 혹시 모를 세균 번식의 불안함과 청소의 귀찮음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문제의 ‘옥시 싹싹’이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심한 고열이 나고 폐병 환자 같은 탁한 기침을 해댔다. 집 근처 대학병원에 갔더니 급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병원 입원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CT사진을 계속 찍고 혈관도 잘 보이지 않는 손등에 수차례 링거 주사도 꽂고 약물을 투여한 호흡기도 내내 달고 지냈다. 입원하는 열흘가량 아이 엄마는 쪽잠을 자면서 아이 곁을 지켰고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픈 어린 자식을 보는 게 괴로웠다. ‘공기가 안 좋아서 폐렴이 걸렸나’ 라는 생각에 가습기를 한 대 더 틀었다. 청결함을 의식해서 가습기 살균제도 꼬박꼬박 썼다. 하지만 퇴원 2주 만에 아이에게 또 폐렴이 발병했다. 의사도 의아해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당시 유아동 입원실이 꽉 차서 응급실에서 대기했었는데 돌이켜보니 대부분 폐렴에 걸렸던 아이들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의사도 폐렴으로 입원한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가습기 살균제와 연관 고리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또 열흘 남짓 고통스러운 입원 생활을 되풀이했다. 다시는 오지 말자고 아이와 손가락을 걸고 병원 밖을 나섰지만 약속은 한 달도 못돼 물거품이 됐다. 또다시 급성 폐렴이 아이를 덮쳤고 아이를 비롯한 우리 가족, 친가와 처가 식구들 모두 하늘을 원망하며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눈물도 소용없었다. 4차 폐렴 증상은 퇴원하기 무섭게 또 나타났고 이후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날락거렸다. 2010년 내내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것 같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아이 엄마도 갑자기 잔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약도 먹어보고 했는데 낫지를 않아서 같은 병원에서 폐CT도 찍고 온갖 검사를 다 했다. 하지만 원인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미상이었다. ‘옥시 싹싹’뿐 아니라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도 사용할 때였다.

2010년은 그렇게 아내와 아이가 폐 질환으로 고통받는 절망의 한 해였다. 하지만 떠올리기도 싫은 더 큰 충격을 이듬해 받았다. 2011년 4월부터 임산부와 영유아가 잇따라 사망했고 정부가 역학조사를 통해 사망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물질로 추정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1년가량 쓰다가 하도 이상해서 사용을 중단한 상황이었는데 보건당국의 발표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한 행위가 아이를 사지로 내몰았던 것이다.

자책감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분노도 치밀었다. 하지만 구매 영수증도, 사용한 제품 용기도 다 버리고 없었다. 물론 병원 진료기록은 남아 있지만 개인이 상관관계를 입증하기도 벅찰뿐더러 오랜 시간과 노력이 요할 게 뻔했다. 다만 정부가 철저하게 밝혀주기를 바랐다. 아이가 생사의 고비를 이겨냈다는 점을 불행 중 다행으로 위안 삼으면서. 아마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피해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듯싶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경찰·검찰·보건당국 등 대한민국 어느 한 곳 속 시원히 ‘가습기 살균제(殺菌劑)’가 아닌 ‘가습기 살인제(殺人劑)’에 대해 원인 규명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올봄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 살균제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그 참혹함을 떠올리면 지금도 몸서리쳐지지만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수백명, 아니 수천명·수만명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진상은 샅샅이 파헤쳐져야 한다. jsh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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