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만스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는 북한에 사는 8살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비밀의 나라 북한을 담아내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품은 관심을 끌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태양 아래’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작품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다. 감독은 영화 초반 자막으로 작품 밖 상황을 설명하는데 ‘북한 당국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에 사는 완벽한 한 가족의 삶을 표현하는데 우리가 실수라도 할까 봐 온종일 친절하게 따라다니는 수행원을 붙였고, 모든 촬영 필름도 검열했다’고 한다. 그들은 시키지도 않은 대본을 짜 오고, 등장인물에 ‘연기 지도’까지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덕분에 공산주의 체제하의 사실적 삶을 찍으려던 초기 계획은 물거품이 됐지만 대신 감독은 더 깊은 진실에 다가갈 기회를 얻었다. 북한 당국의 거대한 거짓말을 고스란히 담아냄으로써 북한이라는 요지경을 관객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시작부터 당황스럽다. ‘액션’이라는 소리와 함께 등장한 진미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나라는 아침 해가 제일 먼저 솟아오르는 지구의 동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나라라고”라며 국가에 대한 찬양을 또박또박 읊는다. 장면이 바뀌어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장면에서도 연출은 계속된다. 호화로운 밥상을 받은 진미 아버지는 식사를 하다말고 느닷없이 진미에게 말을 건다. “사람이 하루 김치 200g과 김칫국물 70㎖만 먹으면 그날 필요한 비타민의 절반을 섭취하는 거야.” 진미도 지지 않고 답한다. “나도 알아요. 늙는 것하고 암 예방을 위해서도 좋아요.” 촬영은 북한 측 연출진의 입맛에 맞을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된다. “진미가 말하면 ‘와 너 그게 어떻게 아니’ 하면서 전부 크게 웃으라고.”
영화가 담아내지 못한 ‘연출’도 많다. 감독이 당초 진미 가족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진미 아버지가 기자이고 어머니가 음식점 노동자이며 좁은 집에서 조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자 진미의 집은 주체사상탑이 내려다보이는 평양의 신식 아파트로 바뀌었고 조부모님은 사라졌다. 아버지의 직업은 봉제공장 노동자로, 어머니는 콩우유 공장 노동자로 바뀌었다.
이 작품을 통해 누군가는 거대한 코미디를, 누군가는 현실적 공포를 읽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가장 바라는 것은 영화 마지막에야 담아낼 수 있었던 8살 진미의 눈물을 기억하는 것 아닐까. 실제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상실된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연민과 아픔을 느낀다. 남한의 국민들이 자신의 동족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갖길 바란다”는 당부를 남겼다. 27일 개봉.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사진제공=THE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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