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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서비스를 없애 가격을 낮춘 알뜰주유소, 석유 수입사가 활용하게 해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전자상거래,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 석유를 섞어 팔 수 있도록 하는 주유소 혼합판매. 정부의 3대 기름값 인하 정책이다. 어느 것 하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최근 주유소 혼합판매와 관련해 업계의 기 싸움이 한창이다. 이는 언뜻 '거대 정유사 대 힘 없는 주유소'의 프레임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실제로 정유사의 '갑질'에 대한 비판도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정유사가 애써 구축한 브랜드와 상표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소비자 편익이지만 역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소비자로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양측의 시각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싸구려 섞은 '짝퉁' 유통 부추기는 꼴
찬성-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 교환거래로 타 정유사 기름 섞어 판매중
● 경쟁유도 통해 가격인하 선순환
● 혼합판매 표시로 알 권리·상표권 보호를
일상적으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자동차 운행자들에게 혼합판매라는 용어는 아직 낯설 것이다. 혼합판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석유제품 복수상표 자율판매'란 우리나라 4대 정유사의 상표를 달고 영업을 하는 주유소에서 다른 정유사가 공급하거나 아예 수입한 휘발유나 경유를 혼합해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혼합판매를 할 경우 주유소 외부와 내부에 그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한 가지 명확히 해야 할 점은 혼합판매 하는 석유제품이 가짜 혹은 불법으로 유통되는 휘발유나 경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백히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12년 9월부터 혼합판매를 허용했지만 혼합판매를 하는 주유소는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혼합판매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활성화할 수 있을지 따져보자. 먼저 흥미로운 사실은 4대 정유사의 상표를 달고 있는 주유소에서 다른 정유사의 기름이 이미 섞여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60%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행은 정유사 간 제품교환의 형태로 이뤄지는데 물류비 절감을 위해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우려하는 점은 이렇게 다른 상표의 기름이 섞이더라도 과연 문제가 없을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기관의 공식 입장은 명확하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정유사별로 투입 첨가제의 종류와 첨가량이 상이하지만 다른 정유사의 휘발유나 경유를 혼합하더라도 품질에 차이가 없고 자동차 성능에도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혼합판매가 제대로 자리 잡게 되면 주유소는 다양한 공급처를 통해 보다 낮은 가격으로 기름을 공급받을 수 있다. 또한 현재 거래 중인 정유사에 대해 가격협상력이 높아질 수도 있다. 결국 구입비용이 낮아지면 주유소는 소비자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게 된다.
참고로 정유사와 주유소의 거래 형태는 대부분 전량 구매계약으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계약된 정유사 제품을 100% 공급받아야 하고 해당 정유사의 상표만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량 구매계약 관행이 실제로 혼합판매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혼합판매를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자주 언급되는 것이 정유사의 상표권 침해 문제다. 관건은 혼합판매 사실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알릴 것인가이다. 정유사는 반드시 혼합판매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주유소는 그렇지 않다. 정유사의 상표권 보호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생각한다면 분명 혼합판매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다만 소비자의 알 권리에는 이미 정유사 공급 단계에서 교환판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포함돼야 한다. 더 나아가 정유사는 교환판매는 물론 혼합판매의 경우도 품질과 자동차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떳떳하게 알려야 할 것이다.
혼합판매 제도는 이미 도입됐다. 이제 정유사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고 주유소의 가격 인하를 통해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혼합판매를 정착시키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소비자의 인식 변화일 것이다. '혼합판매가 품질과 자동차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기관의 공식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혼합판매에 대한 이해 부족과 부정적 시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홍보활동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한 소비자단체에서는 혼합판매라는 용어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정품통합판매'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정부 당국도 혼합판매의 긍정적 효과로 기존 혼합판매 관행의 양성화, 정유사 간의 경쟁 촉진과 이에 따른 소비자가격 인하 등을 실현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홍보활동과 대책 마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산업부가 기존의 전량 구매계약의 문제를 개선하고 혼합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구매계약을 전환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소비자는 결코 공짜를 바라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정보를 원하고 정당한 가격을 지급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면 혼합판매도 이러한 소비자의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착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품질 이상 없는 기름, 싼 값에 쓸 기회
반대-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 기업 브랜드·상표 무력화시키는 행위
● 소비자 합리적 선택 원천적으로 봉쇄
● 책임 소재 불명확, 피해 구제 어려워
산업통상자원부가 3년 전부터 밀어붙이고 있는 주유소의 혼합판매가 아직도 첫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와 일부 주유소 사업자들은 독점공급을 고집하는 정유사를 탓한다. 과도한 유류세와 출렁거리는 국제 유가에 대한 불만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정유사의 입장이 난처하다. 혼합판매가 자신들에는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나쁜 불량 정책이라는 사실조차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혼합판매는 특정 정유사의 간판을 내건 주유소에서 다른 정유사나 수입사의 기름을 분리해서 팔겠다는 것이 아니다. 간판에 표시된 정유사의 '정품'에 별도로 구입한 '싸구려' 기름을 멋대로 섞어서 만든 정체불명의 '짝퉁' 기름을 팔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표를 내걸어놓고 엉뚱한 짝퉁을 팔겠다는 황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정유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유사가 자신이 생산하지도 않은 짝퉁에 대한 법적·상업적 책임을 떠맡아야 할 이유도 없다.
석유제품의 특성상 혼합판매에 기술적 어려움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화학적 성분도 비슷하고 연료의 성능도 크게 차이가 없는 기름은 섞어 써도 자동차 운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국산이나 수입산 쌀이 화학적·영양학적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이유로 국산과 수입산을 마구 섞어 팔아도 된다고 우길 수는 없다. 언론도 이런 정도의 궤변은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더욱이 품질기준을 만족하는 정품 기름만 유통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품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가짜' 기름이 버젓하게 유통되는 것이 현실이다. 기름값의 절반을 넘는 과도한 유류세 때문에 생긴 안타까운 일이다. 산업부가 알뜰주유소 대신 가짜 기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안심주유소를 만들겠다고 법석을 떠는 것도 그런 현실 때문이다. 품질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가짜 기름을 섞어서 만든 짝퉁 기름은 자동차의 운행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혼합판매가 불량 가짜 기름의 유통을 부추기게 될 수도 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혼합판매가 공정거래의 핵심인 '브랜드'와 '상표'를 무력화시켜버린다는 것이다. 브랜드와 상표는 '상표법'에 의해 법적으로 보장된 기업의 권리이고 재산이다. 기업은 자신의 브랜드와 상표를 위해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국제법에 따라 외국 기업의 상표권도 보호해줘야 한다. 법률로 명백하게 규정된 경우가 아니라면 기업이 그런 권리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산업부의 혼합판매는 국제적으로도 보편화된 상표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불량 정책이다. 공정거래를 지켜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야 한다. 상표는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소비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상표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산업부와 일부 전문가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유사들이 자신들의 정품을 서로 바꿔서 판매하는 '교환거래'가 혼합판매를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될 수도 없다. 교환거래는 전국적인 송유관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유조차를 이용한 장거리 운송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과 환경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합법적 관행이다. 다른 정유사의 기름이라도 판매한 정유사가 모든 상업적·법적 책임을 진다. 그런 교환거래는 짝퉁을 판매하는 혼합판매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소비자도 짝퉁을 파는 혼합판매를 용납할 수 없다. 짝퉁 기름이 '소비자기본법'으로 보장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얇은 소비자라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짝퉁의 유혹에 넘어갈 수는 없다. 혼합판매로 기름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산업부가 국민이 낸 세금을 쏟아부어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알뜰주유소와 전자상거래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업부가 자랑하던 가격 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갔던 주유소의 일자리만 사라졌을 뿐이다. 혼합판매는 주유소 사업자에게도 부끄러운 것이다. 정유사의 간판을 내걸었으면 최소한의 상도의는 지켜주는 것이 마땅하다. 짝퉁으로 소비자를 속이고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반(反)기업적·반시장적 혼합판매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내 이익을 위해 남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거부하는 '을질'도 '갑질'만큼 고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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