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속도 421.4㎞/h까지 달릴 수 있으나 실제 370㎞로 운행이 가능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불과 1시간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최첨단 고속철도 KTX해무가 지난 2009년 최초로 공개됐다. 해무 공개시 2015년까지 시험주행을 마치고 상용화가 계획돼 국내 고속철도의 새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고됐고 글로벌 철도시장 공략을 위한 고부가상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프랑스·일본·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 빠른 속도, 기존 KTX에 비해 100여명 늘어난 승객수용 능력, 5% 증가된 에너지 효율 등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8년간 1,180억원을 쏟아붓고도 아직 시험용으로만 운행되고 도입도 확정되지 않은 채 예정보다 5년 늦은 오는 2020년 경전선 부산 부전역~마산 복선전철 구간에 해무를 투입한다는 수정 계획만 있을 뿐이다. 해무 도입의 최대 난관은 선로 해무의 속도에 맞는 전용선로와 신호체계 등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이 문제가 제기됐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개선안은 보이지 않고 5년 후 개통 예정인 경전선에 투입되기만을 기다리는 처지다.
반면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고속철도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고도의 성장과 글로벌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미 2013년부터 아르헨티나 철도장비 수출을 시발로 이탈리아 고속철도 수출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중남미·유럽 고속철도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과도 철도 협력이 강화돼 공동투자 및 협력 형태로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및 라오스 등과 철도가 이미 연결됐거나 연결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추가적인 아시아 지역 판로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달에는 13억달러 규모의 미국 시카고 열차 계약을 따냈다.
중국 고속철도의 글로벌 성장 요인은 저가공세와 거리가 멀다. 첫째, 이미 중국 철도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고속열차는 물론이고 운영 시스템 통합, 디자인, 장비 생산, 설치 및 오류수정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다. 둘째, 중국은 철도 수출시 수출국에 대출을 해주거나 현물거래로 상대국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준다. 실제로 85%에 달하는 대금은 지하자원 등 현물로 받고 15%만 현금으로 회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서는 등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철도 세일즈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중국 고속철도의 성공은 단순히 빠른 열차 개발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인 철도전략을 내세워 집중한 데 있다. 이제 중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한국 철도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글로벌 진출 비전부터 구상해야 한다. 우선 국내에 상용화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해무 수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정부가 도입계획을 앞당겨 상용화해야 한다. 해무 상용화를 5년이나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둘째, 중국과 같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패키지로 만들어 전략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해무 수출 개발사인 코레일과 현대로템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정부 내 전담부처를 지정해 고속철도와 지하철 등 철도 수출부터 글로벌 성장을 위한 범정부적이고 종합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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