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한 지난 2011년 이후 뒷북대응으로 일관해오던 정부가 사고 발생 5년 만에 아직 검토 단계인 살생물제품 허가제라는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진 상황에서 옥시의 뒤늦은 사과보다도 더 늦게 발표된 대책이라 환경부의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는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런 내용의 조치계획을 밝혔다.
이호중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이날 “생활화학제품 관리대상 품목을 확대하고 원료물질의 위해성 평가와 안전·표시기준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살생물제(Biocide) 전반에 대해 감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살생물제품 허가제를 도입해 허가된 물질만으로 제품을 제조할 수 있게 하고 비허용물질로 만든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당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우선 내년까지 살생물제와 방충제·소독제·방부제 등 살생물제품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고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살생물제 관리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살생물제 관리체계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의 모델을 참조하기로 했다. EU와 미국은 현재 별도의 법률에 근거해 살생물제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위해성 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피해자 구제와 관련해서는 비염·기관지염 등 경증, 폐 이외의 질환 등으로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2012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피해자들의 요구가 4년이 지난 이제야 받아들여진 것이다. 환경부는 2014년부터 관련 조사를 해왔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여론이 들끓자 가습기 살균제 조사·판정위원회 아래 폐 이외 질환 검토 소위원회를 꾸리는 등 뒤늦게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다. 심지어 경증, 폐 이외 장기 피해 등의 진단·평가 기준 마련 시점은 현재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다. 앞서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는 2013∼2015년 이뤄진 1∼2차 피해자 조사에서 총 피해 신청자 530명 가운데 경증, 폐 이외의 질환이 나타난 309명은 3∼4등급으로 분류해 의료비·장례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환경부는 또 피해 조사·판정이 지나치게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조사·판정 완료 시점을 1년 앞당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아산병원과 협의해 752명의 3차 신청자 피해 인정 여부를 내년 말까지 모두 가리기로 했다. 아울러 국립의료원 등을 조사기관으로 추가해 지난달부터 신청받고 있는 4차 신청자들에 대한 조사도 올 4·4분기 착수, 내년까지 판정을 마무리 짓는다는 목표다.
이 정책관은 이번 사고와 관련, 주무부처로서 환경부의 조치가 충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근본적 대책으로 지난해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만드는 등 보완조치를 해왔지만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피해자 조사·판정과 관련해서는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평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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