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추경을 요구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유 부총리의 어법에 모순이 있다는 점이다. 그가 추경 불가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경기다. 아직 추경이 필요할 정도로 ‘엄청난’ 위기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에 대한 독립성 침해 논란을 부르면서까지 국제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는 한은의 발권력을 요구하는 상황은 위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연관 기업이 줄도산하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올 게 불 보듯 뻔하다. 일각에서 경제사령탑의 상황인식이 안이하거나 국회의 비판을 피하려고 꼼수를 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후폭풍은 최소로 줄여야 한다. 그러잖으면 우리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 통상마찰 우려나 특정 산업 재편에 국민 혈세를 동원한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돈을 찍어내는 편법을 동원하는 것은 작금의 상황이 그만큼 위중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라면 추경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은이 돈을 찍어내든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든 어차피 부담은 국민의 몫일 수밖에 없다. 시간 탓만 할 게 아니라 야당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절박한 마음으로 설득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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