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조원 규모의 이란 인프라 시장에 국내 건설사가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건설사들은 시큰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수주로 연결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이란 방문을 통해 ‘따냈다’고 표현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나 가계약 형태로 만들어낸 실적이기 때문이다. 보통 건설사들은 해외 발주처와 맺은 MOU를 두고 수주를 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발주처에서 적어도 투자의향서(LOI) 정도는 받은 후 그때야 공시 등을 통해 외부에 알린다. MOU는 언제든지 판을 뒤엎을 수 있는, 구속력이 없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명박 정부 당시 맺었던 71건의 해외자원개발 MOU 중 계약까지 이어진 사례가 1건에 불과한 것은 양해각서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더구나 국내 건설사들은 이번에 양해각서 등을 통해 정부가 ‘따온’ 프로젝트의 사업 구조에 대해 더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란 인프라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상당 부분 국내 국책은행이 담당해야 하는데 이 역시 만만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건설 업계에서는 이란의 한 민간기업과 MOU를 맺고 사업을 추진하려던 대형 건설사가 모 국책은행이 공사 이행과 관련한 보증을 해주지 않아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란이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란 정부는 물론 기업의 신용도가 낮아 국내 국책은행의 ‘보증 기준’에 미달됐다는 것. 모처럼 정부가 이란 세일즈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을까 외부에는 ‘쉬쉬’하고 있다.
아울러 건설 업계는 국내 구조조정 등으로 국책은행의 자금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국책은행이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 건설사가 단순 도급사업에 집중하고 해외민자발전소(IPP)나 민간협력사업(PPP), 시공자 금융 주선 방식의 사업 등 일본과 유럽 건설사들처럼 자금조달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프로젝트에 진출하지 못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jun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