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역사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과 함께 출발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영국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강타한 산업혁명은 공업화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소비와 휴식도 인간답게 할 수 없었다. 또한 당시 자본가들은 ‘구빈원’이라고 부르는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해서 데려와서 일을 시켰으며 지각했다고 임금을 깎기도 했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거대한 사회적 물결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사회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사상 등의 이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확한 이념은 척박한 조건에서 노동운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에서도 80년대의 투쟁에서 이러한 이념들이 큰 역할을 했는데 특히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혁명사상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 덕분에 노동운동은 반정부투쟁과 같은 정치적 노선에서 많은 우군 세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투쟁은 여러 부작용들도 낳았다. 사회적으로 세력이 커진 오늘날의 노동운동권 안에서 이념은 주도권 다툼을 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른바 ‘정파 활동가’라고도 불리는 몇몇 노조 간부들은 노동운동 조직 안에서 자기 세력을 다른 세력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해 이념성을 강화하고 투쟁한다. 그리고 그 이념적 지향점은 대개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혁명노선을 지향하는 이념이다. 그 안에는 “NL계열” 등에서 보듯이 북한 주체사상까지 들어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의 도구로 선택된 이념이 오히려 노동운동 자체를 좌지우지하고 때로는 그 위기를 자초하는 원인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념에 몰입된 노동운동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노동자 혁명의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일컬어졌던 러시아 혁명은 스탈린의 독재와 무자비한 정치적 숙청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모택동 역시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선을 발전시켜 정권을 잡았지만 대약진운동으로 수많은 중국인민들을 굶겨죽였고 문화대혁명으로 다시 중국사회를 초토화시켰다. 현대에 유례없는 3대 세습 체제를 통해서 북한 주민들을 굶겨죽이고 있는 북한 정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 속에는 ‘노동자 권력’이라는 이름의 소수 독재자들만 있을 뿐 대다수 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없다. 이것이 혁명적 이념노선을 무기로 정권을 잡은 후에 자신의 이념노선에 매몰된 결과이다.
노동운동의 근본 목적은 노동자 권익의 향상일 뿐이다. 그 외의 어려운 개념과 과격한 사회변혁론은 상황에 따라서 선별적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노동자 권익 향상이 몸통이고 개념과 이론은 꼬리이다. 레닌조차도 경제 복구를 위해 신경제정책으로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으며, 등소평 역시 중국에 시장경제를 과감히 도입했다. 모두들 몸통을 위해서 꼬리를 적절히 휘두른 사례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었다는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이러한데, 21세기 한국 노동계만 관념적 이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노동운동의 이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할 때이다. 과거 노동운동을 이끌어왔던 이념이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지 따져봐야 한다. 그 속에서 근본 원칙을 찾아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 아마도 노동자 권익의 향상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것은 꼬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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