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이해할 만하다. 지난해 탄소배출권 거래량은 124만톤으로 정부가 할당한 5억4,322만톤의 0.2%에 그쳤다. 올해 거래분(약 100만톤)을 합해도 1%에 못 미친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할당배출권이 거래된 날은 8거래일, 상쇄배출권은 16거래일에 그쳤다. 배출권 구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배출권 차입 한도를 늘려주고 정부 보유 예비물량까지 풀기로 한 이유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근본적인 시장 활성화와는 거리가 먼 임시방편일 뿐이다. 다음해 물량 20%를 당겨쓰면 당장은 넘어가더라도 다음해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풀기로 한 예비보유 물량 1,400만톤도 한해 할당량 5억7,000만톤에 비해서는 미미하다. 더구나 배출권을 시장에 풀면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 범위도 늘어나게 돼 배출권할당제 도입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배출권 시장의 문제는 팔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수급균형이다. 배출권이 남는 기업이 물량을 시장에 내놓아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배출권 이월 한도를 특정하는 등 추가 조치가 수반돼야 한다. 참여자 확대와 기업별 할당량 정보 공개 등의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건이 남아도는데도 팔지 않는다면 먼저 그 이유를 찾아 푸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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