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사진) 전 공군참모총장이 19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공군은 “제6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 예비역 중장이 오늘 0시22분께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김 전 총장은 대한민국 공군력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백범의 차남으로 지난 1922년 9월2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독립정신을 물려받은 김 전 총장은 1937년 일본 공군의 중국 난징 폭격을 보고 공군력으로 조국 독립에 이바지하기로 결심했다.
1944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 공군군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그는 미국 공군 랜돌프 기지에서 정식 비행훈련을 받고 조종사가 됐다.
광복 직후인 1947년 귀국한 김 전 총장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군에 입대해 이듬해 공군 창설에 기여했다.
6·25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26일 김 전 총장은 공군 주요 간부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미 공군의 F-51 ‘무스탕’ 전투기를 인수했다.
김 전 총장은 채 일주일도 안 되는 비행훈련을 받은 다음 F-51을 타고 한국에 돌아와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그는 1951년 8월 지리산 공비 토벌 항공작전, 같은 해 10월 한국 공군 단독 출격작전 등 19차례의 전투 출격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전쟁 기간 제10전투비행전대장이었던 그는 지휘관인데도 여러 차례 출격에 나서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1952년 1월에는 유엔군이 500회를 넘는 출격에도 성공하지 못한 평양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을 완수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쟁 후에는 공군본부 행정참모부장, 공군참모차장을 거쳐 1960년 8월부터 2년 동안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김 전 총장은 총장 재임 기간 전투조종사 비행훈련을 강화하려 T-28 훈련기를 도입했고 대한민국 공군 최초의 유도무기인 GAR-8 유도탄을 도입하는 등 공군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1961년 7월에는 공군의 다양한 작전을 지휘·감독하는 작전사령부를 창설해 지휘 구조를 개선했다.
군복을 벗은 후에도 김 전 총장은 대만 주재 한국 대사, 교통부 장관, 국회의원 등 공직을 두루 역임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1988년 독립기념관 이사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김 전 총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김구 선생의 독립정신을 선양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정부는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김 전 총장의 공로를 인정해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김진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 김휘 전 에이블리 대표, 김미씨 등 3남1녀와 사위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있다. 김 회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21일 오전6시30분에 열린다. 안장식은 같은 날 오전11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에서 공군장으로 엄수된다. (02)2227-7550./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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