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은 대만 현대사의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민주화 인사들이 1979년 12월10일 대만 제2의 도시 가오슝에서 노래 제목에서 따온 동명의 진보잡지 창간 기념집회를 열고 민주화 요구 시위를 하다 경찰과 충돌한 사건이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집회 주동자 수십 명을 체포해 이 중 8명은 ‘반란죄’ 죄목으로 무기징역과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등 강경하게 탄압한다. 이와 함께 대만 섬 예찬 노래일 뿐인 ‘메이리다오’도 금지곡으로 지정한다.
이 사건은 1947년 최대 2만8,000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2·28 사건 후 처음으로 대만 섬 출신인 ‘본성인’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킨다. 당시 징역형을 받은 메이리다오의 사장 쉬신량, 부사장 뤼슈롄과 변호를 맡은 천수이볜 등은 이후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주진보당 창당과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쉬신량은 민진당 주석을 지냈고 이 사건으로 정치에 입문한 천수이볜은 2000년 야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통이 됐다.
이후 민주화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지다 1987년 40년 만에 계엄이 해제되고 이전까지 언급조차 금기시된 2·28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4년간의 진상 조사가 이뤄졌다. 이후 2월28일을 ‘평화의 날’로 지정하고 1997년에는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보니 금지곡이었지만 ‘메이리다오’는 대만의 독립과 민주화 요구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실제로 가오슝에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인근의 지하철역이 메이리다오로 명명됐다.
지난 20일 대만 총통에 취임한 차이잉원(蔡英文)은 취임식에서 2만명의 참석자와 함께 ‘메이리다오’를 합창했다. “우리의 요람 메이리다오는 어머니의 품 안…따뜻한 태양은 높은 산과 전원을 비춘다.”
차이 총통은 이처럼 시민과 함께 대만 독립의 노래를 불렀음에도 취임사에서 하나의 중국을 의미하는 ‘92공식’에 관해서는 애써 언급을 피했다. 무슨 의미일까.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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