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가 이렇게 가닥을 잡은 것은 일감 몰아주기가 여전히 편법적인 경영권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되고 결과적으로 멀쩡한 중소기업을 도태시킨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판단은 옳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집단 기준이 바뀌면 규제도 바뀌는 기준에 맞춰야 한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만을 예외로 두겠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침해하는 일이다. 비록 이유가 정당하더라도 하나씩 둘씩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정책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재계는 “과거 대기업집단 기준을 올릴 때는 관련 규제 적용 대상도 모두 올렸다”며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재계의 주장이 맞기는 하지만 이렇게 반대하는 속내가 혹시라도 대기업집단에서 빠져 일감 몰아주기를 하려는 데 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공정위의 판단이 아니더라도 일감 몰아주기는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는 나쁜 행태인 만큼 사실 대기업집단은 물론이요 대기업집단이 아니더라도 근절해야 마땅하다.
현재 자산 5조원 이하인 기업집단의 경우에도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지만 전체 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정도로 큰 규모여야만 처벌할 수 있어 실효성이 많이 떨어진다. 대기업집단이 돼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더라도 과징금 규모가 크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문제가 남는다. 일감 몰아주기가 법의 문제로만 여겨져서는 안 된다. 도덕적 규범은 여전히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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