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굴지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수년간 배출가스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폭스바겐 사태. 이에 따른 소비자의 피해 정도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다를 바 없지만 두 정부의 대처는 극과 극이었다. 미국은 신속하고 강력했다. 적발 2주 뒤 즉각 리콜, 벌칙 부과 계획을 발표했고 폭스바겐을 상대로 100조원대에 이르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회사는 결국 1조원대 보상안을 내놓았다.
반면 한국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사태 2개월 뒤에야 리콜 명령을 내렸다. 법 규정이 없어 대기오염에 따른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는 지난 1월에야 리콜 명령을 거부했다는 혐의를 물어 폭스바겐을 형사 고발했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인지 폭스바겐은 한국에서는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폭스바겐 사태에서 국내 소비자들을 대리해 손해배상 소송을 이끌고 있는 하종선(사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소비자와 기업 간 분쟁에서 소비자는 책임 입증 능력 등의 부족으로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얼마나 책임감 있게 사태 해결에 나서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소비자 피해 구제에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폭스바겐의 대기오염 혐의를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가 미국 정부의 대응을 보고 뒤늦게 폭스바겐을 고발하면서도 독일 본사는 고발 대상에서 뺀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5년 넘게 논란만 무성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정부의 책임 방기가 문제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 변호사는 “일각에서는 ‘정부가 글로벌 기업을 너무 압박하면 통상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국제 협상력을 위해서라도 소극적인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제라도 미국 정부의 대처 방식을 본받아 전향적으로 소비자 보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소비자들의 수호자’로 주목받는 하 변호사는 사실 20년 넘게 현대자동차 등에서 일한 대기업 출신이다. 기업 편에서 소비자 편으로 돌아선 이유를 묻자 그는 “지금도 많은 사건에서는 기업을 대리하고 있다”며 “어느 한쪽 편도 아니다”라고 손사래 쳤다. 이어 “기업과 소비자가 상생하는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하 변호사는 앞으로 폭스바겐 소송의 진행 방향에 대한 계획도 제시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 미국 소비자와 폭스바겐 간 합의안이 오는 6월 도출되면 미국 법원에 한국 소비자도 피해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폭스바겐이 법원 판결 전에도 보상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서도 미국에서의 보상 내용을 적극적으로 강조해 한국 소비자와 미국 소비자 간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하 변호사는 최근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받고 있는 닛산 캐시카이의 국내 소유주들을 대리해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을 상대로 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캐시카이는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질소산화물을 내뿜고 있는데 유럽이었다면 즉시 리콜조치가 행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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