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3일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 노조와 만난 자리에서 ‘근로자의 경영 감시 법제화’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총선 전부터 경제·민생 이슈를 주도해온 김종인 대표가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한 조선업체 근로자들 앞에서 달콤한 ‘립서비스’를 풀어 놓은 것인데 이에 대해 여당과 재계는 “포퓰리즘적 발언”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향후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서 여야 간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3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노조의 유무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노사 협의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은 이 노사 협의회를 통해 경영 성과와 사업 계획 등을 공유하지만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가 직접적으로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김종인 대표의 주장대로 근로자에게 경영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려면 이 법안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제정안이 필요한 만큼 여야 합의는 필수적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산하 기관에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노동 이사제’ 역시 김종인 대표의 구상과 맥을 같이 하는 제도다. 독일에서 보편화된 노동 이사제는 노조가 기업의 이사회에 참석해 최고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야권의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재계는 물론 여당 역시 수용하기 힘들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경제 전문가인 이종구 당선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노사 관계를 선진적으로 정립하는 것과 노조에 경영권을 내준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며 “(김종인 대표의 주장처럼) 근로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는 것은 기존의 노사 협의회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도 “주식회사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은 주주들의 이해 증진”이라며 “전체 기업 중 주식회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99%에 달하는 한국과 5%에 불과한 독일을 비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업 구조조정이 정치권과 산업계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면서 새누리당 역시 이날 거제도를 방문해 조선업계 종사자의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에 대해서는 특별한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정부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신속히 지정할 수 있도록 당에서 적극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로부터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선정되면 사업주는 각종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근로자의 실업급여 지급 기간과 금액 역시 크게 올라간다.
/거제=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