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서 신기록이 나오려면 혼자만 잘 뛰어서는 절대 안 된다. 반드시 필요로 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을 넘어설 정도로 잘 뛰는 연습 파트너가 필요하다. 혼자 아무리 잘 뛴다고 해봐야 자신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파트너 겸 경쟁자가 없으면 기록 경신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야 한다. 여러분의 최고 경쟁자가 누구인가. 가장 철학적인 대답은 바로 어제의 나 자신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답은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최대 경쟁자다.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취향이나 처지가 비슷한 경우가 많을수록 경쟁자가 될 확률은 당연히 높다. 입사 동기들이 제일 친하면서도 승진 때에는 서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라톤은 흔히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들 혼자 뛰도록 하지 왜 같이 뛰는가. 경쟁은 윈윈하는 좋은 방법이다.
한 시골에서 옥수수 농사를 하는 농부가 한 명 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브랜드를 인정받을 수 없어 수입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고급 옥수수 품종을 심기로 했다. 고급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길만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새품종 종자를 자신의 밭에 심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이 구입한다. 아니 거의 마을 전체 옥수수밭에 다 심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다. 왜 그럴까. 그 농부는 자신의 밭에만 고급품종을 심어봐야 고급품종이 수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의 고급품종 옥수수와 이웃의 저급품종이 섞이면 결국 저급품종밖에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을 사람들 다 불러놓고 공동 구입하자고 설득해봐야 시간만 걸리고 의견이 갈리면 서로 사이가 벌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의 돈으로 다 구입해 무상으로 나눠주고, 그리고 그 달콤한 열매를 공동으로 맛보고 나면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주고받기(give& take)하면 윈윈하는 좋은 길이 나온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프리카의 사파리 공원에 놀러 갔다. 생전 처음 보는 야생동물들, 동물원 철창 너머로만 보던 맹수들을 차를 타고 가까이서 보게 되는 스릴을 만끽하면서 즐긴다. 아뿔싸! 두 사람은 그 선을 넘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서 좀 더 자유와 스릴을 즐기다가 표범과 딱 마주쳤다. 이 맹수는 두 사람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다. 중학생 아들이 더 만만한지 그쪽을 향해 더 다가가려는 자세다. 자, 이 두 사람은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침착하게 말한다. “아들아, 내 어깨에 목마를 타라.” 자신보다 훨씬 커보이는 두 사람 앞에서 표범은 서서히 뒤돌아서 간다. 아버지와 아들 간 신뢰에 기초한 협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공동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는 협동이 윈윈으로 나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윈윈하는 관계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약속할 수 있다. 한쪽의 희생을 담보로 유지되는 관계는 얼마 가지 못한다. 문제는 윈윈의 의미가 무엇인가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협업을 통해 잉여가치 10개를 창출할 때 5대5로 나눌 때만이 윈윈인가. 파레토 법칙대로 8대2면 안 되는가. 아니면 투자한 리스크에 비례한 이익을 가져갈 때가 윈윈인가. 이런 불확실성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이것을 극복해주는 것이 상호신뢰다.
‘내가 너의 등을 긁어 줄테니 너도 나의 등을 긁어 달라’는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말을 기억하라. 남의 등을 먼저 긁어주고 나면 상대방도 나의 등을 긁어줄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분배정의를 가능하게 한다. 이 분배정의가 지속 가능한 협조를 일궈낸다.
자신의 최대경쟁자를 파트너로 삼아라. 그래야 마라톤 기록 경신이 이뤄진다.
자신이 먼저 상대방에 줘라. 그래야 마을 전체의 브랜드를 고급으로 끌어올릴 옥수수가 만들어진다.
자신이 상대를 먼저 신뢰하라. 그래야 표범과 같은 공동의 적을 물리친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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